[아흔살 청춘] “독감 2주째 이왕 죽을 바에는 샘골에 묻히자”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주말 레저농원 Camp nabe 대표] 팔자에 없는 독감에 걸려 2주간 호되게 병치레를 했다. 이왕 죽을 바에는 샘골에 묻히자는 마음으로 샘골 농막에 들어 눈 속에서 호연지기를 했더니 좀 치유가 되었다.

박상설 옹의 겨울나기···피난처이자 보금자리 오대산 ‘샘골’

매서운 바람 뚫고 눈 숲에 나뒹굴며 사는 91세의 노인. 홍천 오대산 북쪽 산기슭에 초라한 농막을 갖고 있는 나는 시도때도 없이 번잡한 도시를 훌쩍 떠나 그 피난처에 종적을 감추곤 한다.

푹푹 빠지는 눈밭에 서서 소담스레 내려앉은 長遠한 눈꽃을 바라본다. 일상의 진부한 것들을 해맑은 눈 세상에 헝클어 놓고 마지막 여생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

문패도 없는 농막에 불을 켠 지 50년이 넘었다. 나는 젊은 날 밥벌이의 지겨움을 못 견디어 피난처로 산행에 자신을 혹사하며 깨우쳤다. 인생의 좌절, 번민, 허무 따위를 걷어치우고 순간을 살아내 마치 자연처럼 뒤돌아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고통스러운 삶의 생지옥에서 도망치는 아지트가 생긴 셈이다.

주말 농사일을 처음부터 짜임새 있게 계획한 것은 아니다. 화가는 아틀리에를 갖고, 연기자나 음악가는 공연장이 있어야 하고, 부유한 사람은 별장을 갖고 있듯이 가난하더라도 분수에 넘치는 문명은 멀리하고, 자연의 은밀한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오막살이 농사꾼, 바로 나의 모습이다.

작고 소박한 것이 마음의 풍요를 갖게 하는 원천이란 믿음이 확고해지니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헤밍웨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마이애미의 스퀘어 휴양별장 등 세계의 부호와 귀족들이 자랑하는 것들이 부럽지 않게 됐다.

나만의 아나키 농막 小國

초라하지만 남의 손이나 그들의 생각이 아닌 내 온몸으로 흙으로 이루어 만든 나만의 아나키 농막소국에서 상업문화를 조롱하고, 인습에 매여 사는 소인배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멀리하게 된 나. 나는 자유인이자 자연인으로 녹색평화를 삶의 제일 높은 가치이자 신조로 삼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늙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을 때 끝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주말 농사일이며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산에 오르며 레포츠와 레저를 즐긴다.

러시아 국민의 절반 이상은 ‘다차’라는 주말농원을 갖고 있다. 그곳의 주말농사일과 레저 그리고 내재된 인문 및 생태적인 정서가 러시아인들의 고향이자 향수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다차에서 농산물 생산을 통해 소득을 올리고 사회 안정을 얻고 있다. 독일의 Klein Garten(소농원)이란 주말농원은 가족과 동호인들을 위한 심신의 휴양공간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땀 흘려 노동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며 사회정의와 착한 인성을 길러낸다.

구룡령을 휘감고 도는 백두대간 후미진 곳과 맞닿은 북한강 발원지 가운데 한곳인 홍천 샘골 계곡에는 겨우내 엄청난 눈이 쌓인다. 무릎까지 쌓인 눈이 러셀로 헤쳐나가는 이 할아비를 꼼짝도 못하게 붙잡곤 한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예전의 화려하고 용맹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영락없이 산꾼이다. 나는 내게 “너는 지금 몇 살인가?” 물어보았다. “낡아빠진 몸을 이끌며 헐어빠진 등산화로 나이를 짓밟고 뭉개며 천덕꾸러기로 꼬박꼬박 살아가는 것이 내 나이”라고 나는 답해주었다.

즐거움의 허덕임도 잠시, 예전 같지 않은 노인의 발힘은 그러하다 치고 엉치뼈가 시큰거린다. 온 힘을 다해 억지를 부려 갈짓자 걸음을 해보지만 소용없다. 고생스럽지만 즐거움에 빠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느껴본다.

깊은 눈 속에 파묻혀 길을 만드는 것은 체력과의 싸움이다.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스스로를 격려도 하고 한심해 하면서 하늘만 바라본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금강송의 고고하고 그윽한 無心의 위용. 영원히 변치 않는 금강절개의 노송을 바라보며 ‘아시아엔’을 상징하여 기념으로 심은 금강송도 저러하기를 염원한다.

눈꽃 세상에 드니 번뇌와 망상은 사라지고

한천(寒天)의 쌀쌀한 구름 떠있고 맑은 새소리 들리는 샘골은 뽀얀 흰눈으로 파묻혀 깊은 잠에 잠겨있다. 이 할아비는 하얀 입김 내쉬며 장엄한 눈꽃 숲에 사로잡혀 아름다움조차 말할 수 없는 적막에 휩싸인다.

나는 한평생 산에 나무를 심으며 자연살이에 내재된 인문적·생태적 가치를 思辨的이 아닌 온몸으로, 오지산골에서 소꿉놀이 즐겨온 촌부다. 도시의 사치·환락·갈등으로 점철된, 번잡한 삶의 근처에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 외골수다.

웅장한 백두대간 산줄기에서 뻗어 내려온 심산유곡의 골짝은 눈과 얼음으로 하얗게 떨고 있다. 겨울에 눈 구경을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관광지와는 달리 이곳 샘골은 태고로부터 인적이라고는 볼 수 없고 족제비, 토끼, 수달피, 산돼지의 고향이다. 이곳을 걷는 동안 나의 마음 깊은 곳은 始原을 걷는 기념비적인 큰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찬다.

혹한 속 눈더미가 쌓인 버드나무 가지에서 콩알만 한 솜털 버들강아지가 솟아올라 오들오들 떨고 있다. ‘아~ 봄이로구나!’ 이 깊은 산속은 이 세상이 아닌 듯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생명의 신비에 놀라웠다.

겨울과 봄이 서로 저항하며 날을 세워 다툰다. 봄의 고향은 버들강아지. 눈은 겨울을 먹고 산다. 그 출생의 근원에서 서로 더불어 수줍어하는 자연의 첨예한 접점을 찾아 유람하는 이 노병은 얼마나 행복한가!

산에 나를 포개어 나마저 자연이 된다

샘골 오지에 들면 마음이 가벼워지며, 알 수 없는 더 먼곳을 향한 충동으로 산하에 나를 포개어 나마저 자연이 된다.

생각이 깊어지며 도시와 농촌의 냄새가 바뀌고 존재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내가 갈 길은 오직 철학과 사유가 살아 활동하는 시원의 오지다.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바꾸어준 주말 농원, 그 힘은 무엇인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한평생 나무 20만 그루를 심으며 영혼정화를 위해 쉬지 않은 묵상이다.

높이 오르고자 한다면 먼저 밑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진정 강하고 쓰러지지 않는 것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뿌리만 굳건하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뿌리가 없는 것은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 신세가 된다. 열심히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하느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가다가도 중간에서 포기하곤 한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이고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구태의연해서다. 그러면서도 습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변화의 참 기쁨을 모르고,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자기와 타협하고 변명하며 합리화한다. 그리하여 고질적 습성을 화장터까지 끌고 간다.

인생의 길은 고독하고 영광스러운 것. 행운이 찾아오는 원리는 행동만이 유일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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