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나를 위한 성지” 파키스탄 10만 영혼의 안식처 ‘마클리 고원 공동묘지’

[아시아엔=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사장] 유네스코가 파키스탄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워크숍은 파키스탄 역사 유적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획됐다. 이의 일환으로 파키스탄 신드 주 관련부처도 11월 2일 카라치에서 방글라데시, 요르단, 네팔, 오만 등 국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사례발표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 신드 주 문화관광부 장관 사이드 사르다르 스하는 “오는 1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이자 지역의 문화유산인 마클리 고원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할 것”이라 발표했다.

마클리 고원 공동묘지는 1981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파키스탄의 6대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8~10제곱킬로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묘지는 왕족, 성인, 철학자 등 10만여 영혼의 ‘최후의 안식처’다. 마클리의 유래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설이 있다. 14세기 이슬람 성지 메카를 순례하던 한 순례자가 어느 날 우연히 이 지역의 한 모스크에 도달했다. 신의 깨달음을 얻은 듯 그는 갑자기 멈춰 서 “하다 마카 리”(여기는 나를 위한 성지)라고 외쳤다. 이 터를 발견한 사람은 수피교 성인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셰이크 하마드 자말리. 그는 이 곳을 마클리라 불렀다. 이 유적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공간으로 인류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 자리는 라지푸트 원주민 출신인 삼마 왕조가 연안도시 타타를 건설해 수도로 삼았을 당시인 1352~1542년 사이 묘지터로 자리잡았다. 때문에 마클리의 남쪽 출입구에서 6km 떨어진 지점엔 삼마 왕조를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마클리 고원의 특징은 이 곳이 단순히 묘지터라기보단 작은 궁궐처럼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는 점이다. 무덤, 캐노피, 울타리, 모스크, 그리고 성인들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한카까지 마클리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들과 공간들은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다했다.

마클리는 여러 문화와 종교가 살아 숨쉰 공간이기도 했다. 1524~1739년 마클리는 아르군, 타르칸, 무굴왕국 등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지만 이들의 문화와 융화했다. 침략자가 남긴 정교한 꽃무늬와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이 유적의 건축과 예술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힌두교, 불교신자들도 수백 년간 이 곳에서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그러나 마클리 공동묘지는 침식과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와 연방정부의 관리태만으로 쇠락했고, 유네스코 측으로부터 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게 됐다.

마클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주 정부도 잘 알고 있다. 신드 주의 관련부처 고위관계자는 <아시아엔>과의 인터뷰에서 “중앙 정부로부터 책임과 권한을 넘겨 받은 후 문화유산 재건에 착수했다. 우리는 공동묘지 재건을 위한 기초 계획안을 설계했고, 유네스코의 승인도 얻었다”고 밝혔다.

마클리는 현재 또다른 위협에 직면에 있다. 무덤을 도굴하고 귀중한 묘비석을 훔치려는 도굴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때문에 지방 정부 측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경비인원까지 배치했다고 한다. 주 정부는 더 나아가 주변 환경 정비에도 나섰다. 무질서하게 자란 덤불과 낙서를 정리했고, 가로등도 설치했다. 이 관계자는 “도굴꾼들을 막고 주변 환경도 정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손되거나 뿔뿔이 흩어져 있는 비석들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리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마클리 재건 프로젝트는 더욱 탄력 받을 전망이다. 복원사업에 미국도 참여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첫 주, 미국 총영사 그레이스 쉘턴은 이 재건 사업의 준공식에 참석해 26만달러(약 2억 8천만원)을 기부했다. 총영사는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마클리는 인류의 역사를 품은주요 문화유적이다. 우리 후손에 귀중한 유산과 이야깃거리를 전하기 위해 이 유적을 보존하고 가꿔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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