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깊어가는 세대 갈등과 밀려나 버린 연장자의 지혜

[아시아엔=프라모드 마터 인도 SPOTFILMS CEO] 지난 70년간 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은 대변혁을 겪었다. 다수의 독재, 왕정, 군주제 국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새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도 변화된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모국 인도는 1천년 이상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300년 이상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너무나 무력했던 인도는 1947년 독립 이래 급격한 변화를 체감했다.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인도의 독립 1세대들은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고심했다. 민주제도, 의회, 그리고 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이들에게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자유는 국가의 재건을,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자유는 개인과 가족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인도가 막 독립할 즈음, 30대 지식인층은 교육에 초점을 맞춰 자녀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는 이들이 원하는 교육을 시행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다.

격동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인도 사회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 종교적인 의식들을 지켜 왔다. 전통적인 인도 사회가 간직했던 것은 가족 내에서의 서열이었다. 인도의 전통적인 가족은 삶의 지혜를 터득해온 연장자를 존중했고, 또 그들의 뜻을 따랐다. 이 문화는 도시와 시골 가릴 것 없이 인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족 내 연장자들은 완고했고,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 하기도 했다. 어른의 뜻에 따라야만 했던 어린 세대들에게 의사결정권이란 사치였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이는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만 했던 엄격한 규칙이기도 해서, 반항아는 가족 구성원들과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40년대 들어서야 자유를 획득했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것이기도 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중반, 독립국가 인도의 2세대는 결혼해 가정을 꾸릴 채비를 갖췄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엄격한 사회규범에 따라 성장한 ‘현대의 젊은 인도인들’이 이제 막 부모가 되려던 그 찰나였다. 이 세대는 사회의 전통에 저항했고,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오랜 전통의 대가족 제도 역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자 핵가족 제도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2세대 인도인들은 열심히 일했고, 독립 가정을 충분히 꾸려갈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인 보상도 얻었다. 비록 그들은 구세대가 그려놓은 틀 안에서 성장했지만, 세계인으로 거듭날 각오가 돼 있었다. 이들 세대 중 일부는 서구의 관습을 받아들였고, 서구의 방식에 따라 자녀를 양육했다.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현대의 인도인들은 중대한 시사점들을 남겼다. 2세대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전통적인 육아 방식을 바꿨다. 신세대 부모들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좋은 것들’도 아낌 없이 자녀에게 줬다. 또한 아이들이 예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리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장자의 지혜’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나 자유를 마음껏 누린 3세대들은 근면성실의 의미와 돈의 가치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 지난 수십 년간 개발도상국가를 연구해온 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러운 진전이라 일컬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도에 있어 그리 간단히 치부될 문제는 아니다.

인도는 그 다음 세대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지만, 3세대 인도인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점점 멀어져만 갔다. 3세대는 억압 속에서 자란 부모의 그림자에 갇히길 원치 않았고, 2세대도 3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2세대 인도인들은 자녀에 자유만 선사한 것은 아닐까?

부처의 지혜를 따랐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곧으면 부러지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중용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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