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세월호 유족의 ‘참담과 비통’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참담’(慘澹)과 ‘비통’(悲痛)이 있다. 참담은 몹시 슬프고 괴롭거나 끔찍하고 절망적일 때 쓰며 비통은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픈 것을 말한다. 이 말은 10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작심발언을 쏟아낸 성명서에 나온다. 얼마나 참담하고 비통하면 그런 성명서를 발표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구속돼 주 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한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는 공직자들과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하시던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한 채 재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염려해주시는 분들께 송구한 마음으로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견뎌왔습니다.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인내하였습니다.

저는 롯데, SK뿐만 아니라 재임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습니다. 재판과정에서도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에 대한 구속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3일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은 다시 6개월 동안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변호인들은 물론,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변호인단은 사임의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기업인과 공직자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65)이 그제 ‘재판 거부’ 뜻을 밝힌 것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계기로 재판을 사법판단보다 정치적 이슈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담과 비통’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묻고 싶다. 물론 “최순실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는 말에서는 참담과 비통을 곱씹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차라리 이 모든 사태가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깨끗이 사과하고 더욱 성실히 재판을 받겠다고 했으면 다소라도 국민들의 동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남의 탓이라고 돌리고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모습으로는 너무 치졸하다.

사실 ‘참담과 비통’을 호소할 분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세월호 비극 이후 유가족 중 그 누구도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살맛나는 세상, 행복,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생각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살맛나는 세상, 행복, 희망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참담과 비통’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그 유가족들이 ‘참담과 비통’을 벗어나 행복을 말하는 경우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라며 소리쳐 외칠 때라고 한다. 고통의 가장 깊은 바닥에 닿았던 유가족은 한국사회 변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지난 3년 동안 셀 수 없이 불렀던 노랫말이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규하고 있다. “민생이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아야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와 내 가족의 목숨도 지켜주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어느 국민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참담하고 비통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주책임자다. 정작 세월호 유가족들은 행복을 잃은 채, 끝나지 않은 ‘4월16일’의 비극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담과 비통’ 속에서 남들의 행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나는 세월호 유가족을 보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할 때도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식을 잃고 행복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 그러나 그들만큼 남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너무나 참담하고 비통한 단장(斷腸)의 슬픔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기쁨’과 ‘베풂’이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할 큰 시련과 고통을 겪어온 세월호 유가족의 삶은 한국사회의 ‘고통 받는 자들 중의 고통 받는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미수습자를 찾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담과 비통’한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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