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처칠이 홍준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와 윈스턴 처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모임에선 유독 성품이 강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얘기만 나오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막말 정치인’으로 꼽힌다. 또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마치 하대하는 듯 반말 투로 말을 함부로 한다. 대선에서 홍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크게 패한 것은 보수의 기질을 홍 대표가 오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수는 입이 가볍거나 행동이 경솔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보수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 위엄을 뿜는 것이 보수다. 그래서 보수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홍대표의 막말은 보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보수의 명예를 떨어뜨린다. 막말이나 반말은 점잖은 보수층으로 하여금 실망감을 준다.

윈스턴 처칠이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처럼 존경받는 인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상대방을 미소 짓게 하려면, 먼저 미소를 지으세요. 관심을 끌고 싶으면, 그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세요. 칭찬을 듣고 싶으면, 먼저 칭찬하세요.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을 대접하는 대로 당신을 대접합니다. 간단합니다. 비결 같은 건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요.”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齒)는?” “하나도 없습니다.” 상용이 묻는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한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은 이제 됐다는 듯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공자(BC 551~479)가 노자(생몰미상)를 만나러 갔다. 겸양의 미덕을 주창한 노자와 공자는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에 “늙은 노자를 젊은 공자가 51세 때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는 얘기가 있다.

공자는 위의(威儀)를 바로 하고 노자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께서는 인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격은 비인격적일 때 인격을 운위(云謂)하는 법이라오.” 공자가 다시 묻는다. “선생께서는 윤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리란 비윤리적일 때 윤리를 말하는 법이요.”

공자의 가르침이 학생들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고 줄을 바로 세우려고 애쓰는 것이라면, 노자는 가만 두어도 걸을 때 되면 걷고, 밥 먹을 때 되면 밥 먹으니 간섭 말고 놓아주라는 것과 같다. 공자에게는 인격이나 윤리가 중요하지만, 노자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선과 악은 공존한다.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라는 것이다.

노자는 <무임>(無任)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른 개의 수레바퀴 살이 한 개의 수레바퀴 통으로 모아져 있는데, 그 중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굴대가 끼워져 수레는 쓰일 수가 있게 된다. 진흙을 반죽하여 그릇을 만들 때, 그 중간에 아무 것도 없음으로써 그릇은 쓰임새가 생기게 된다. 문과 창을 내어 집을 만들 때, 그 중간에 아무 것도 없음으로서 집은 쓰임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이롭게 쓰이게 되는 것은, 없는 것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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