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인생 차민수⑧] 내 인생의 ‘멘토’이자 ‘그림자’, 영원히 못 잊을 어머님

1991년 가을 차민수씨 어머니 이기연(가운데)씨가 영화배우 이연걸(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아시아엔=차민수 드라마 ‘올인’ 실제주인공, 강원관광대 석좌교수, <블랙잭 이길 수 있다> 등 저자] 1984년 이혼 후 한국에 있는 어머님에게 갔다.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어머님 밖에 없었다. 댁에 도착하자 어머님의 싸늘한 반응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런 어머님이 아니었다.

운전기사를 시켜 내 가방을 마당으로 집어던지면서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나에게 客이려고 왔느냐”는 것이었다. 당장 나가라고 하셨다. 어머님이 당신 집에서 나가라는데 안 나가겠다고 싸울 수도 없고 쑥스러워 뚜벅뚜벅 자그마한 가방 두개를 들고 나왔다. 갈 때가 없어 단성사극장 뒤에 있는 한 여관을 찾았다. 여관비는 1만2천원이었다. 할 일 없이 빈둥대기를 6개월 정도 한 것 같다.

모두들 부잣집 아들이 미국에 가서 성공하였다는데 한국에 왜 오래 머물고 있는가? 하고 의아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것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미국에서 온 친구가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가자고 한다. 나는 본시 술을 한잔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은 나도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 말없이 따라 나섰다. 신사동에 있는 어느 룸살롱으로 향했다. 근데 웬일일까? 한잔만 마셔도 안사불성이 되는 내가 주는 대로 받아 마시는데 도무지 취하지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양주를 반병은 마신 것 같았다. 나로서는 치사량이 될 정도의 많은 술을 마셨다. 해장까지 하며 소주를 또 마셨다. 그리고 나서 보니 나를 따라 나왔던 룸살롱 아가씨가 아직도 내 옆에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돈도 없고 미안해서 그냥 가 주었으면 하였지만 나를 따라 내가 묵는 여관까지 따라왔다. “오빠 여기 살아요?”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내가 좋아 그냥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나를 도와주며 나의 벗이 되어 주었다. 난생 처음 만난 그녀에게 많은 신세를 지었다. 나는 결혼하여 미국으로 데리고 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그렇게 못하였다. 정말로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는 건달처럼 이렇게 한국에서 지낼 수는 없고 미국으로 가서 다시 일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미국행을 택했다.

회사에는 수십년 어머님을 모시고 일을 도와 오신 배 전무님이 계셨다. 나는 전화를 걸어 미국에 다시 들어간다고 하였다. 김포공항에는 어머님과 친구 분이 나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수속을 마치고 들어가려는 나에게 어머님이 5천달러쯤 담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 돈을 김포공항 바닥에 집어던지고 말했다. “나와 어머님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났으니 돌아가셔도 내 앞으로 유산도 남기지 마십시오.”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에 불효자식도 이런 불효자식이 없다.

나중에서야 어머님이 나 때문에 눈물로 지새운다는 말을 전해듣고 나의 모자람과 불효함을 깨eke고 뉘우치게 되었다. 어머님의 나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자식보다도 크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평생 어머님 속을 썩이며 흰 머리카락만 늘게 하였다. 내가 성공하여 돌아왔을 때 크게 기뻐하시며 “나는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만 한 것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었다”며 좋아하셨다.

보는 사람마다 우리 막내가 효자라고 자랑하셨지만 내가 효자가 아니라 어머님의 교육이 훌륭하셨다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아, 나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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