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문재인의 ‘착한정치’ 성공시킬 암행어사 어디 없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착한정치(善治)란 무엇일까? “백성을 잘 다스림 또는 잘 다스리다”는 뜻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권위도 벗어 버리고 백성들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이 하는 정치가 아닐까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3개월이 지났다. 지난 겨울 영하 15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염원으로 참으로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섰다. 그 결과 적폐(積弊)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적폐청산’,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주장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대통령에 당선되었기에 ‘이제는 적폐가 청산되겠구나’, ‘좋은 나라가 되겠구나’ 이렇게 믿으며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두 가지 염원에 발목 잡는 세력과 부도덕한 인사들 때문에 정말 착한정치를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다.

공자(孔子)께서는 “제 몸이 바르면 시키지 않아도 실천하지만, 제 몸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따르는 사람이 없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고 했다. 그래서 착한정치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말 훌륭한 인재를 구해야 한다.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고을 수령이 있었다. 1779년(정조 3년)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이 암행(暗行)을 떠났다. 정조 2년 봄 박우원이 공주를 거쳐 공산으로 접어들었다. 호서 어사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 인접 지역에서 많은 탐관오리를 목도하고 논죄하였던 박우원은 새로 들어온 공산 땅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여느 고을에서는 사람들이 보리밭에서 일할 생각은커녕 몸도 못 가눌 정도여서 모두 양지바른 데 엎드려 있기가 일쑤인데, 공산 마을은 초입부터 보리밭에서 일하는 일꾼들로 가득하였다. 모두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있었고, 일하는 손길도 기운찼다. “어허··· 이런 일도 다 있는가?” 농사꾼이 농토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내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만 봐온 박우원은 이 모습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인근 마을 주막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활기에 넘쳤다. 밭일을 마치고 한잔 하러 들어온 듯한 장정들이 밝은 웃음을 흘리며 살맛난다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우원의 호기심은 더욱더 커졌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박우원은 수행원인 역졸(驛卒)을 술자리에 끼어 이야기를 듣고 오라고 시켰다.

마을 사람들과 두어 순배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뒤 역졸이 돌아왔다. 들어오는 역졸의 얼굴은 조금 당황한 듯이 보였다. “왜 그러는가?” “거 참,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동안 속고만 살았는지, 이상한 지방 관리들만 보아서 관리라면 무조건 못 믿는 건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역졸을 다그쳐서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공산 고을 판관이 사람 됨됨이가 뛰어나, 그가 부임해온 이후에는 쓸데없이 백성들이 노역에 불려 나가는 일이 없어져서 농사짓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금 같은 보릿고개에도 진휼(賑恤)이 원활히 이루어져 백성들 중에 굶는 자가 없고, 모두 보리를 거둬들일 때까지는 부족하나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세금도 줄어들어 부담이 한결 줄었다며 백성들이 다들 환하게 웃더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은 지금 판관이 오고부터 이루어진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그가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는 판이라고 하였다.

박우원도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초봄에 내려와 늦봄까지, “어느 고을로 가든 들리는 소리라곤 지방 관리에 대한 백성의 원성뿐이었거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는가? 정말 있다면 칭찬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우원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아침. 박우원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공산 관아로 갔다. 관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에서는 한창 진휼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동헌 마루에는 판관이 나와 앉아 아전들이 진휼하는 모습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 박우원은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졸에게 마패를 보이며 암행어사 출두임을 알렸다.

사졸은 처음에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으나 곧 동헌(東軒)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아뢰자 판관 이덕현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의연하게 관아 밖으로 나와 암행어사 박우원을 맞아들였다. 객사(客舍)로 들어선 박우원은 일단 객사의 치장이 조촐하며 소박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소박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헌과 객사를 통해 이덕현의 됨됨이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들어온 밥상도 소박하되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였다.

보통 암행어사가 출두하면 해당 지방관은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며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갖은 수를 쓰곤 한다. 그런데 공산 판관 이덕현의 대접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박우원이 객사에 머물면서 서류를 살피는 동안 판관 이덕현은 한번도 박우원을 만날 것을 청해오지 않았다.

모든 서류를 다 살피고 아무런 흠을 찾아내지 못한 박우원은 판관 이덕현의 착한정치에 감탄했다. 이후 판관 이덕현은 그 청빈함을 나라에서 인정받아 이천 현감을 거쳐 진주 목사, 의주 부윤 등 중요 지방 관직을 섭렵하고 중앙 요직으로 사간원 대사간까지 올랐다.

세상에 어질고 현명한 인재는 있다. 다만 널리 찾지 않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암행어사 제도를 되살려 경륜은 우주에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꿰뚫는 인재를 널리 구하면 문재인 정부의 착한정치는 저절로 이우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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