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천하통일 41] 한나라가 진의 영정왕에게 멸망한 이유

영정와 한비자 얻기 위해 한나라 멸망시키다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토끼가 달려가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그것을 본 농부는 그날로 쟁기를 버리고 그 나무를 지키며(守株) 다시 토끼가 걸려들기를 기다렸지만(待兎), 결국 토끼는 얻지 못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한비자는 이 비유를 들어 고대 성인의 방법만을 고집하는 유가의 어리석음을 비판했다. 즉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고,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치법을 배우고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주대토(守株待兎)’는 “고루하게 옛것을 고집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모순(矛盾)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다.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팔 때는 “내 방패는 단단해서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다” 하고, 창을 팔 때는 “내 창은 날카로워 어떤 물건도 꿰뚫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그러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오?”라고 묻자 무기 장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비의 이 모순 이야기는 사실 요순 두 임금 고사와 유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 유가는 고대의 성왕들인 요(堯)왕과 순(舜)왕을 찬양하는데, 순을 찬양해 “요가 천자일 때 순은 스스로 각지로 나아가 노동을 실천해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성인의 덕이다”라고 했다. 한비는 “요가 성인이라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을 것이니 순이 나설 여지가 없다. 만일 순이 나아가 세상의 잘못을 고쳤다고 한다면, 요의 정치에 잘못이 있었음을 나타내므로 요는 성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비유를 통해 “요와 순이 모두 성인이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유가는 요나 순 임금 같은 고대의 성인(聖人)들을 높이 찬양하고, 그들의 행위를 본받는 것이 위정자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순자는 말한다. “요순 임금의 선양이라는 말은 헛소리다. 요 임금이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현자인 순 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했다는 이야기는 유치한 자의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라며 유가에서 주장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비웃는다.

법가의 비조 한비자 또한 스승에 동조하며 한발 더 나간다.

“순이 요를 협박하고, 우가 요를 협박하고, 탕이 걸을 협박하고, 무왕이 주를 정벌한 이 4인의 왕자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이다.”

공자·맹자가 말하는 인의예지의 정치의 화신인 요순 임금을 한마디로 박살내고 있다.

과연 순자와 한비자, 법가의 비조들다운 멋진 멘트들이다. 이러니 유가의 전통에 꼿꼿이 버티고 있던 중국과 조선의 유생들이 순자 한비자라면 수염이 곤두섰다.

또한 한비는 말한다. 옛날의 왕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은 자리에 매달리는 것은 그 실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지금은 재물을 모으려 하는 것은 딱히 유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덕이 땅에 떨어져서가 아니다. 옛날에는 재물이 남아돌았고, 지금은 재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성인을 본받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유가는 전쟁도 정치도 힘에 의존하지 말고, ‘인(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시대가 내려오면서 무력은 점점 확대되었고, 입으로 ‘인의(仁義)’를 주장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멸망의 길을 걸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옛날에는 도덕을 다투고 이어서 지략을 다투다가, 지금은 힘의 우위를 다투고 있다. 아무리 ‘인의’를 외쳐 본들, 상대가 힘을 구사하면 꼼짝도 할 수 없다. 이쪽에서도 힘으로 대항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정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유가가 주장하는 ‘인의’에 의한 정치란, 다른 말로 사랑과 정의에 따른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근원은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다. 그것이 아무리 깊고 넓다 한들 사랑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또한 백성은 정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며 천하를 유세하던 시절조차도 그의 사상에 감복하여 따른 제자는 고작 70명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평범한 군주였지만, 일단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모든 백성이 그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권위에 복종했으며, 공자도 그 신하가 되었다. ‘인의’라는 점에서 보자면 애공은 공자의 발바닥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군주가 되어 권위의 힘을 갖게 되자, 모든 백성을 복종시키고 공자도 신하로 삼을 수 있었다.

유가는 군주에게 권위의 힘을 사용하라고 권하지 않고, ‘인의’를 펼쳐 천하의 왕이 되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군주에게 공자와 똑같이 되라는 말과 같고, 백성 모두에게 공자의 제자가 되라는 말과 같은데, 이는 실현될 수 없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법을 기반으로 군주의 권위를 확립하는 것 이외에 난세를 살아갈 방법은 없다. 그런데도 유가의 학자들은 잘못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세상을 현혹하고 있다.

진나라의 영정왕이 <한비자>를 읽고 나서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옆에 있던 이사가 복잡한 심사를 감추며 말한다.

“이것은 한비의 저술인데, 저는 이 자와 함께 동문수학했습니다. 한나라에 가면 반드시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정왕은 한나라에 대한 욕심과 한비자를 얻을 생각 등 겸사해서 약한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느닷없이 진왕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한나라는 정신없었다.

뒤늦게 진나라의 의도를 알아차린 한나라 왕은 즉시 한비를 진나라로 보내 겨우 화를 모면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영정왕을 만난 한비는 말더듬이지만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는 것은 국익에 전혀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조국 한나라를 살렸다.

한비자를 직접 만나본 영정왕은 그의 탁월한 식견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사는 학생 시절부터 가졌던 열등감을 다시 떠올리며, 위기를 느꼈다. 이사는 영정왕에게 말한다.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로서 진을 위해서는 벼슬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돌려보내는 것도 앞으로 후환거리가 될 것이므로 그냥 죽여버리자고 건의한다. 이사는 일단 옥에 갇힌 한비를 그냥 두지 않고, 진왕의 뜻인 것처럼 독약을 보내 스스로 자진케 하였다. 한비 또한 이것이 이사의 계략임을 눈치챘지만, 진왕에게 상소 한번 올린 후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독약을 마셨다.

한비를 통한 자구책도 실패로 끝나고, 다시 재개된 진나라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한나라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나라는 기원전 231년 주요 지역의 태수들이 진나라에 영토를 바쳤으며, 영정왕 17년(기원전 230년) 한나라 왕 안(安)이 포로로 붙잡혔고 한나라는 멸망했다. 한나라는 이렇게 자국의 인재 한비 때문에 6국 중에서 최초로 무너진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군주 영정의 편애가 당대의 인재를 죽였다.

이제 다른 5국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질 일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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