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40] 영정왕, 한비자를 만나다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이제부터 진이 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역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꼭 재현되고 반복되는 것. 그들 6국의 실패와 진의 성공을 살펴보면서 역사의 냉엄한 현실을 새삼 곱씹어보고자 한다. 동시에 우리는 지도자의 선택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와 함께 나라를 지탱하는 모든 세력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지를 볼 것이다. 묵묵히 뒤따르는 백성들의 염원과 일상의 삶이 가지는 무게의 의미도 주목할 것이다.

매사에 망설임이 없었던 영정왕은 이사의 말대로 목공 못지않은 아니 더 훌륭한 군주였다. 그는 무엇보다 열린 사고의 소유자로서 평생 인재를 중시하고 중용했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통찰력, 대범함이 뛰어났으며 일단 기용한 인재는 충분히 신뢰해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인재를 대하는 그의 진정성과 관용적인 태도는 다른 제왕들을 압도했다.

영정왕이 단행했던 축객령과 이사의 충간(忠諫)으로 그것에 대한 과감한 취소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천하의 인재들이 진나라로 구름같이 몰려드는 효과를 일으켰다. 유명한 왕기(王?)·모초(茅焦)·위료(尉?)·왕전(王?)·왕분(王賁)·이신(李信)·왕리(王離)·몽염(蒙恬) 등 전국시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몰려들어, 제각기 진의 정치·경제·군사·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진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영정왕과 이사는 이제 천하통일 사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춘추전국시대 초부터 무려 500년 이상을 버텨 오던 전통의 6국이 진나라에게 차례차례 쓰러지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천하의 대국 여섯 나라가 그렇게 간단히 멸망당할 수 있었을까?

영정왕이 가장 먼저 공격목표로 삼았던 조나라는 6국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해 천하통일에 최대 장애물이었다. 과거 장평천하대전으로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조나라지만, 조나라는 아직도 강자로서 이목(李牧)과 방난(龐煖) 등 명장이 버티고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영정은 북방의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그 인근에 붙어 있는 가장 약한 한나라부터 공격하기로 한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한나라를 먹어야 그 다음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곧장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한비자 때문이었다. 한나라에는 무서운 현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곧 법가사상가 한비이며 그의 책 <한비자>(韓非子)다. 그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한비자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로 바로 주구사서(酒拘社鼠)의 고사다.

송(宋)나라에 술장사가 있었다. 그는 훌륭한 술장사로 술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은데 어느 날부터 술이 안 팔렸다. 그는 동네어른에게 물었다.

“술맛도, 서비스도 다 좋은데 왜 갑자기 술이 안 팔리는지 모르겠어요?”

“새로 들인 당신 집개가 사납소?”

“그렇긴 합니다만, 개와 술이 무슨 관계입니까?”

“두렵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애를 시켜 술을 사오게 하는데, 아이는 개가 무서워 당신 주막집을 가지 않고, 다른 주막집을 가지요. 그러니 당신 집 술이 안 팔리는 거요.”

한비는 계속해서 “나라에도 개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사나운 개가 선량한 사람을 물어뜯으려고 하듯, 바른 정치를 하려는 충신을 끊임없이 해코지하려는 간신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자는 대궐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간신만 판친다.

이어 제환공(齊桓公)과 재상 관중(管仲)의 대화가 나온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가장 걱정해야 하는가?”

“사당의 쥐입니다.”

“쥐가 사당에 들어가 살 때, 불태워 죽이자니 사당이 탈 것이요, 물을 끌어 죽이자니 사당의 칠이 벗겨질까 걱정입니다. 사당의 쥐를 잡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군주의 좌우에 간신들은 밖으로 권세를 부려 백성을 착취하고, 안으로는 패거리를 지어 국정을 농단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잡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당의 쥐처럼 말입니다.”

“술집 개처럼 간신이 충신을 물어뜯고, 사당의 쥐처럼 군주를 어지럽힌다면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한비는 법술가의 대가답게 논설을 편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서는 부국강병을 이루어 다른 나라와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군주가 강력한 통치력을 가져야 한다. 군주가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의로 통치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난세에 맞지 않다. 군주가 강력한 국가체제를 만들어 국정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평범한 군주라도,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이 바로 ‘法術’이다.

법술의 ‘법’이란 곧 법률이다. 법은 철저하게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술’을 도입한다. 이것은 군주가 가슴에 새겨 두고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내를 들켜 버리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

‘술’이란 한마디로 신하에 대한 군주의 통치 기술이다. 이 경우에 신하란 대신에서 일반 관리, 때로는 백성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군주는 신하들이 경애심을 가지고 자신을 받들어 모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서는 안 된다. 신하라는 존재는 자신의 이익밖에 모른다. 그들은 군주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하 노릇을 할 따름이다. 따라서 군주의 힘이 약해지면 군주의 지배권을 배제하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서구의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것과 흡사한가? 마키아벨리는 한비자를 공부했음이 틀림없다!

한비는 한(韓)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로 본명은 한비(韓非), 한자(韓子)라고 불리다가 당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한유(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와 구별하기 위해 한비자로 불렸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서출이며 날 때부터 말더듬이여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외롭게 성장했다. 그의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울분이나 냉혹한 법가 사상은 그 영향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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