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수의 로·티·플 ⑦] ‘코리아게이트’ 박동선을 바라보는 또다른 관점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뉴시스>

[아시아엔=차민수 강원관광대 교수, <Black Jack 이길 수 있다> 저자,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이른바 1976년 코리아게이트사건(일명 박동선사건)으로 알려진 박동선 회장에 대한 사실은 언론에 보도돼 잘 알려진 부분과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공존한다.

그는 1935년 평남 순천 출신으로 아버지를 따라 남하한 후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인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했다. 부친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유사업을 했으며 안국동 삼거리에 주유소가 남아있다.

박 회장은 조지타운대 졸업 후 워싱턴에 고급사교 모임인 조지타운클럽을 열게 된다. 차관급 이상, 장성급, 상하의원만 멤버로 가입할 수 있는 고급 클럽이었다. 자연스레 엄청난 인맥이 생겼다.

1970년대 한국은 쌀이 부족하여 브라질에서 60만톤을 수입한 일이 있었다. 그때 미국의 쌀을 대량생산하는 주의 상하원 의원들이 그를 찾아와 한국쌀의 수입원을 미국으로 바꾸어 주면 한국의 어려운 문제들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당시 미국은 2백만톤의 쌀이 남아 처치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한국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와 미국의 사이가 매우 껄끄러워, 미국으로부터의 차관과 원조가 감축되던 시절이었다.

박동선은 이런 사실을 한국에 알렸고, 이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바로 전해졌다. 박정희는 반색을 하며 사실 여부 확인 후 쌀 수입국이 미국으로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톤당 커미션이 50센트로 시작했으나 이후 2달러로 올랐고, 한국은 미국쌀 1백만톤을 수입하기에 이른다.

또한 한국은 수많은 미국 상하의원들의 후원을 업고 여러 문제들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도 국무부 과장 정도가 나와 면담을 해 줄 정도로 약소국이었다. 그러나 박동선 회장의 부탁으로 미국의 장관들이 한국 총리를 직접 마중하게 된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박 회장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이 일은 박동선을 로비스트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박동선은 얼마 후 한국에서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바빠서 갈 수 없다고 하자 “VIP가 급히 찾으신다”는 말을 듣는다. 박동선은 한국에 나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한국에도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겠으니 당신이 맡아서 성사시켜 주기를 바란다.” 쌀 수입건 하고는 규모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8%의 커미션에 몇억 달러가 넘는 것들이었다. 그가 나서 캐나다 원전까지 들여오며 한국은 높은 수준의 원전기술을 갖게 된다.

박동선은 그 많은 돈을 주체할 수 없어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 한국인 처음으로 스위스은행에 구좌를 열게 된다. 그는 혼자 가질 수도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엄청난 자금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하게 된다.

필자는 박동선 회장이 국가를 위해 큰 돈을 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에게 3만~5만달러를 정치자금으로 주며 수많은 친한파 의원들을 만들었다. 그 액수는 당시 엄청난 규모의 후원금이었다. 미국법에는 특정 국가를 위하여 로비를 하게 되면 로비스트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는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로비는 불법이 됐다.

박동선은 또한 가난한 예술인들을 지원해줬다. 그 중에는 박수근 화백같은 분도 있다. 하루는 박 화백이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셔 감사하다. 제가 드릴 것은 그림밖에 없다”며 박동선 회장에게 그림 30여점을 선사했다. 그는 박 화백 그림을 다시 선물로 대부분 사용하고 지금은 한두 점만 갖고 있다고 한다. 수십억 가치가 있는 그림들이다.

필자는 박동선의 로비활동에 붙여진 ‘코리아게이트’를 부정적으로만 봐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박동선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일했고, 주변 어려운 이들을 대가 없이 도와주며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하고 싶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