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제4세계’ 난민들 정착 꿈꾸는 시인 박두규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박두규는 전북 임실 출생으로 생명평화운동가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지리산 사람들’ 대표를 맡고 있고 ‘여순사건 순천시민연대’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 <숲에 들다>(애지, 2008) 등이 있다.

들뢰즈는, 유목적 삶이야말로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으로 보았다. 유목민은 소유의 개념이 희박하고 그들의 이동생활은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위로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원시 인류가 유목을 포기하고 정주를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정주가 유목보다 더 안정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주에 적합한 조건을 못 갖추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유목적일 수 밖에 없다. 필자가 어렸을 때 보았던 남사당패나 유랑극단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목민처럼 정주민의 조건(경제적)을 갖추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유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유목적 삶을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정주민으로서도 유목민으로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한 영토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한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존재에게는 어떤 한 곳에 정주하는 것이야말로 제일의 과제가 된다. 난민 문제가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 제4세계 사람들에게는 정주야말로 가나안 입성일 것이다.

뿌리 내리는 일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하여 몸을 숨기는데

나무들은 제 자리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는다.

뿌리를 내리는 것들의 정성이 이러한데

나는 햇빛도 꽃들도 너무 쉽게 얻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평생 오갈 데 없다는 것 또한 절망이 아니듯

나무는 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스스로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햇살이든 눈보라든, 자유든 절망이든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을 정성으로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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