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한’의 노래서 ‘개벽’ 재촉하는 ‘상두소리’로

 

백기완 작시·김종률 작곡 ‘임을 위한 행진곡’

프랑스 라마르세이예즈처럼 희망의 노래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1980년 5월 광주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다.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그 후,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다. 이어 1997년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이해부터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렸다.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 학생과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606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2005년, 관련단체 발표 자료),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거나 지금까지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제창을 금지해온 ‘임을 위한 행진곡’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제창되었다.

화려하게 부활 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에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얼마나 억압받고 억울하게 숨죽여왔던가?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작시, 김종률 작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9년 이후 종북 시비에 몰려 수난을 겪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새 대통령과 함께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힘차게 부르는 이 장엄한 노래 소리는 정말 억압의 기억을 뚫고 터져 나오는 민중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이 노래는 필자에게 1980년, 서울역광장과 최루탄으로 얼룩진 숨막힘의 기억, 그리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 영화는 광주지역의 일상적 풍경 속에 들이닥치는 신군부의 참혹한 학살극을 그려냈다. 전선에 배치됐던 공수부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뜻밖의 상황에 황당해하면서도 시민을 폭도로 몰아 총격을 가한다.

금남로 참극을 목격한 시민들은 너나없이 시민군 민주투사로 변한다. 그런 투쟁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 영화 <화려한 휴가>의 주제곡으로 울려 퍼진다. 모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서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이예즈’(La Marseillaise)가 연상되었다.

이 노래는 1789년 시작된 혁명의 열기에 힘입어 출정하는 프랑스 북부 라인강 지역 지원병을 위해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들어진 ‘라인 군을 위한 군가’였다. 그런데 지중해 연안 남부 마르세이유 지원병들이 이를 힘차게 부르며 파리로 행진해 오면서, 곡목이 ‘라 마르세이예즈’로 바뀌었다 한다.

그 이후, 노래는 국민통합의 상징이 되어 곧 프랑스 국가로 정해졌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낀 나폴레옹과 부르봉왕조의 검열로 금지됐다가 1879년 다시 국가로 복원되었다. 이 노래는 역동적 힘을 발휘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몸과 마음에 떨림으로 퍼져나가는 이 경이로운 파장.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외침은 현재진행형의 역사 만들기를 세상에 전파하는 중이 아닌가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5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고,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다. 어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은 끝이 나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시민의 힘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표현에 담긴 탄식과 분노, 그리고 저항은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시민의 힘을 바탕삼아 제대로 된 새로운 나라 만들어야 한다. 올해는 정의를 짓밟고 진실을 가려온 모든 세력을 엄벌하고, 지난 정권의 적폐를 낱낱이 청산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했던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민주적 통제와 견제를 받는 곳으로 바꾸는 해가 되어야 한다. 국민의 뜻이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정치와 선거제도를 바꿔 정치구조를 혁신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재벌중심의 경제를 여러 경제주체들 간에 균형을 이루는 경제로 바꿔야 한다. 특혜와 반칙이 사라진 공정한 경제로 바꾸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사회구성원 어느 누구도 궁핍과 불안에 떨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꿈과 미래를 일구어가는 사회로 바뀌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남북대결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의 군사 및 외교 갈등을 고조시키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와 동북아를 평화와 협력의 지역으로 만드는 해가 돼야 한다. 국회는 물론 행정부와 사법부, 모든 국가기관은 시민들의 이같은 열망을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

또 정부는 나라를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 어용단체가 아닌 시민들의 열망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국가기관을 감시하는 단체로 변모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恨)이 서린 노래가 아니라 ‘라 마르세이예즈’처럼 희망의 노래가 될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냥 노래가 아니다. 개벽(開闢)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다. 나라가 바로 선 후에야 주의(主義)도 있고 평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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