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⑫] 전국시대 최고 스승 ‘귀곡자’와 제자 4인방

귀곡자(鬼谷子)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귀신이 사는 깊은 계곡, 귀곡 산장에 사는 귀곡자는 당대 최고 사학의 스승.

그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제자를 가려 뽑았다. 아니, 안 뽑았다. 도대체 그의 학당 입학시험을 통과하는 자가 없었다. 그 자신조차 사람들과 별로 교류하지도 않았다.

이런 그에게 당대의 인물들 극소수가 문하에 있었으니, 그들은 모두 전국시대의 스타 중의 스타로 성장했다. 전국시대의 스타 4인방이던 그의 제자들은 다름 아닌 소진과 장의, 손빈과 방연이다. 손빈과 방연은 스승 귀곡선생으로부터 병법을 배워 각각 당대의 강대국인 제나라와 위나라에서 대장군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치명적 우정으로 서로 죽이고 죽었다. 손빈은 <손자병법>의 저자이며 병법의 달인. 오늘날 그는 세계적인 병법의 대가로서 글로벌한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손빈과 방연은 동기동창으로 전국시대를 장식한 대장군들. 그들은 각각 제와 위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장렬하게 죽었다. 특히 손빈은 사후에도 신화로 남았다.

그들의 후배인 소진과 장의는 국제정치안보와 외교술로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고자 했다. 그들은 이제 전국시대를 주름잡으며 천하를 소용돌이치게 만든다.

그들에 앞서 당대의 최고사부인 귀곡자鬼谷子 얘기부터 시작한다. 그는 마치 무협지 속의 사부 같다. 그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설들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난무한다. 그는 귀곡선생이라 불리며, 이름은 왕리(王利) 혹은 왕후(王?)라 하며, 세상에서는 귀곡자라 호칭하여 그를 사상가의 반열에 놓는다.

귀곡자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제나라의 운몽산에 살면서 귀곡산장에 은거해 귀곡선생이란 이름이 붙었다. 국제정치, 심리학, 천문, 지리, 병법, 처세술 등 모든 과목에 능통했다. 또한 교류범위도 넓어 세상과 등진 묵자와도 친구였다.

귀곡자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지만 사마천은 그를 존경하여 실존인물로 기록하고 있으며, 높이 평가한다. 귀곡이란 곳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했기 때문에 귀곡자라 불렸고, 중국 사상사에서는 유세가(遊說家)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인 합종연횡의 종횡가(縱橫家)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그들 종횡가들은 말한다. 모든 가문 중에서 우리만큼 교육 가성비 최고인 학당이 어디 있는가? 공자 가문도 삼천 제자라고 하지만 성공한 제자가 누가 있나? 기껏 안자 정도? 다른 가문도 누가 있나. 우린 전국시대 최고 스타가 네명이나 있고, 또 그 제자의 제자인 이사도 있지!(물론 이사의 스승은 순자다. 순자가 귀곡자의 제자일지 모른다는 설이 있다)

그는 ‘귀곡서당’이라는 최고의 사학을 설립하고는 세상을 구할 영재교육을 하였다. 교육과목은 유세·병법·음양·술법 등이고, 그 자신 <귀곡자>라는 책략서를 저술했다. 사실 이 책이 그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후학들이 책을 써놓고 그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의심받고 있다. 그만큼 귀곡자의 신비로운 능력을 평가한다는 뜻.

귀곡자는 영재들을 교육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했다. 다만 찜찜한 것은 손빈과 방연, 소진과 장의 모두가 치명적 우정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경의 전국시대 말기는 상앙의 법치주의적 변법으로 서쪽의 신흥국 진나라가 동쪽의 전통적 강호 제나라와 함께 막강한 강대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모두가 진나라의 급작스러운 성장에 놀라고 있었다. 마치 현대의 어느 나라처럼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여 주변국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하는 것처럼, 진나라를 ‘위수의 기적’이라고 했다든가?

그러나 제나라는 정통성 있는 강태공의 나라이며, 오래된 부자 나라인 반면, 진나라는 변방의 오랑캐 나라. 각국이 진의 성장을 무서워는 할망정 존경하지는 않았다. 진의 일거수일투족이 곱게 보여질 리 없었다. 당시의 국제정치 평론가들은 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룰 나라로는 오직 제나라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후일 등장하는 큰 장사꾼 여불위도 난세 속에서 천하통일에 대하여 한 판 베팅할 나라로 제와 진 가운데서 크게 고민했다.

춘추전국시대

전국 7웅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사생결단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을 돌며 자신의 주장과 능력을 설파하는 소위 ‘유세가’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들 유세가에게는 무엇보다 천하 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들은 천하대세를 간파하고 그에 따른 방책을 수립하는 능력이 꼭 필요했다. 또 이 과정에서 유세가들은 각국의 지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책을 설파해야 했기 때문에 언변술이 절대적이었다.

유세가의 언변술은 한 칼에 상대방을 공략하는 필살기적인 말솜씨와 천하를 끌어안는 비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의 수도승 같은 공부와 인격도야가 필요했다. 그들은 왕과 제후들을 말로써 제압해야 했다. 천하를 논할 때 모두가 수긍해야 했다. 이의를 제기하면 그 자리에서 설복시켜야 했다. 그야말로 세치 혀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적수공권의 자신이 살아남고 동시에 한 나라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절대적인 순간을 넘어야 했다.

귀곡자는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스승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의 지혜와 지식을 다 전수했다. 학자들은 그의 광대한 학문과 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선 천문학, 점복팔괘, 예측학에 통달했다. 둘째는 병법으로 군사작전에서의 무궁무진한 변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병법을 가졌다. 셋째는 유세학(游說學)으로 국제정치를 꿰뚫고 명쾌한 논리로 천하를 논했다. 넷째는 인격도야와 정신건강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였다.

이 가운데 유세학을 바탕으로 외교술을 펼친 종횡가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승의 전략을 추구하는 병법에서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천은 종횡가의 대표적 인물인 소진과 장의를 평가했다.

이제 소진과 장의는 진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핵심을 파고들어, 전국시대의 천하를 뒤흔드는 합종책과 연횡책을 가지고 세상에 나간다. 그들은 진나라를 포위하는 약자연합인 합종책과 이에 대응하는 각개격파 전술인 연횡책으로 천하를 평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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