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께] ‘간병전쟁’을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2018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국민의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노인인구 증가가 급속화될수록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문제가 바로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 간병’이 아닐까 싶다.

요즈음 우리 부부 역시 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다. 무슨 탈이 났는지 먹기만 하면 속에 탈이 난다. 자연 나를 간병하는 아내에게 짜증을 낸다. 몇술 뜨지도 못하는 식사를 하면서 끼니때만 되면 타박을 하니 아내도 죽을 지경일 것이다. 세끼 식사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바치는 아내 입장에서 얼마나 서운할까?

아내가 건강이나 하면 다행인데 나보다 더한 ‘종합병동’이다. 그러니 너무 힘들다며 어디 젊은 마누라라도 숨겨놓은 분 있으면 모셔오라고 성화다. 우리 내외가 간병이 어려워 노인요양원이라도 가면 좋을 것 같으나 고집 때문에 그도 어렵다. 시간이 되면 그냥 정들고 익숙한 내 방, 내 침대에서 고이 가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부부 한쪽이 ‘치매(癡?)’라도 걸린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노인성 질환 중 대표적인 질환이 ‘치매’다. 국내 치매환자는 약 72만명이며, 노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로 인한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문제는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을 간병하는 건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아 있다.

83세 고영순씨(가명)의 노후계획은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밥을 먹이려는 고씨와 세 살 배기 어린 아이처럼 떠먹는 요구르트만 찾는 남편과의 실랑이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남편을 간병하다 보니 고씨도 신장 기능저하와 허리통증으로 인한 세번의 수술 등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자녀들이 생활비와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부부의 약값에 모두 쓰고 있는 실정이다.

77세 이수길씨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환자인 아내를 17년째 돌보고 있다. 아내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다. 하지만 간병이 장기화되니 경제적 여유는 급격히 줄고, 자신 또한 두 차례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평생 약을 먹어야하는 육체적 한계에도 부디 친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간병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보호자가 아닌 간호사 중심의 간병 체계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우리보다 10년 앞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일본은 1994년부터 사적 간병을 없애며 공적 영역의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 치매를 개인에게 맡긴 우리나라의 간병, 이대로 계속 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치매환자는 요양기관에서 조차 꺼리고 있다. 지금 가족들이 치매환자를 요양기관에 보내는 것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비용’이다. 보건복지부 ‘포괄간호서비스 제도화방안’ 자료에 따르면, 환자 및 보호자의 월평균 간병비 부담액은 280만원에 달한다.

설령 비용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국 요양병원 중 공립요양병원은 77개소, 그 중 24개소만 ‘치매전문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치매환자는 늘고 있지만 수용 가능한 기관은 부족한 수급불일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환자는 자리가 나길 기다리거나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고가의 병원비를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경우는 허다하다. 다수의 요양병원이 치매환자는 관리상 어려움을 이유로 받지 않는다. 이렇게 병원이 환자를 고르는 상황이 발생해도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요양시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집에 남겨진 환자를 돌보는 건 또 다시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병스트레스가 극단적 선택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 7년간 만성폐질환과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뇌병변 장애 3급인 남편을 동시에 간병해 온 63세 박현옥씨는 과거 집을 3채나 갖고 있었지만, 집안에 아픈 사람이 두명이니 가계경제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보살폈던 남편은 지난 달 세상을 떠나고, 이제 박씨에게 남은 건 24시간 돌봐야 하는 시어머니와 병원비를 내기 위해 진 빚뿐이라고 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으로 가족들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정적 심리상태가 지속되면 극단적인 경우 간병자살이나 간병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간병에 쏟는 비용과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환자를 돌봐야 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보호자는 경제활동 시간을 줄이거나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가계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치는 ‘간병파산’이나 간병하는 보호자의 삶마저 무너트리는 ‘가정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병폐인 간병을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럼 간병 불모지 대한민국의 대책은 전혀 없는 것일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간병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책을 내놓고는 있다. 정부 주도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통해 환자에게 24시간 전문 간호인력을 제공하는 서울의료원과 전국에서 두 번째로 고령화가 심각한 경상북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치매보듬마을’ 사업이 이것이다. 두 가지 모두 환자와 보호자 등에게 높은 만족감을 주고 있고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 인력의 수급 문제로 전체 의료기관의 20% 정도만 제공하고 있다. ‘노인인구 700만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 새로 취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차원에서의 최우선으로 서둘러야할 과제는 이 ‘간병전쟁’의 해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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