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만교·불교·힌두교는 한 뿌리③] 불교 부처님 열반 300년 뒤 아소카왕때 전성기

불교 탄생으로?브라만 쇠락?

[아시아엔=홍익희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 <세 종교 이야기> <유태인 이야기> 저자] 브라만 중심의 지배질서에 맞선 신흥세력들이 갠지스강 유역에서 힘을 키웠다. 그리고는 누구든 전생의 업으로 비롯된 운명에 충실해야 더 나은 생을 얻는다는 브라만식 사상 대신 인간의 운명이란 각자 행하기 나름이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붓다사상을 받아들였다.

붓다의 일깨움은 평소 하층계급과 연결된 모계혈통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던 마우리아제국의 3세손 아소카왕을 크게 고무시켜 하나의 인도 건설을 뒷받침하는 통치이념이 되었다. 그 뒤 서민들이 불교에 마음을 열었다.

이렇게 카스트제도와 브라만교에 반발해 태어난 종교가 불교다. 불교는 만민평등사상을 그 뿌리로 삼고 있다. 불교가 출현한 기원전 6세기경 브라만교의 실상과 사회환경을 살펴보자. 다신교인 브라만교는 신과 조상들에게 드리는 제사의례를 중시했다. 그리고 카스트 4계급이 각각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 브라만교는 기원전 7~6세기에 인도 중부와 동부로 퍼져나갔다. 이 새로운 지역에 도시들이 생겨나고 상공업이 발달해 강력한 군주국들이 출현했다.

이에 따라 브라만의 종교적 권위와 지도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도시 분위기는 보다 합리적인 새로운 종교를 요구했다. 번잡한 제사의례에 대한 비판과 제사행위 대가로 사후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린다는 관념에도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범아일여 사상에도 나타났다. 인간은 ‘유한한 행위’(業 karma)로서는 도저히 영원한 세계를 얻을 수 없고 끊임없이 윤회하며 생과 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더불어 인간의 참 자아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아는 신비적 지식을 통한 해탈이 강조되었다.

카스트의 본질은 인간을 원천적으로 생각하는 자(영혼이 있는 자)와 단순히 일만 하는 자(영혼이 없는 자)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카스트체제에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는 영혼을 가진 브라만 등 상층계급에 국한된다. 하층계급 특히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하층민들에게는 브라만교가 아닌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브라만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사행위와 내세를 거부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나타났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사문(沙門)이라 불렸다. 그들은 출가자들로서 숲속에서 고행과 명상을 통해 인생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방식을 제시했다.

그들 가운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있었다.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뒤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 불렸다.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 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석가족의 왕자로 탄생한 석가모니는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영혼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그는 29세에 출가해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에 크게 깨달아 녹야원이라는 동산에서 다섯명의 비구니들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 뒤 그는 45년에 걸쳐 중부 인도 각지를 돌며 설법을 전파하며 인생고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 기원전 6세기의 일이다. 그 뒤 브라만교는 불교에 밀려 쇠퇴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난 후 불교가 발전해 오다가 기원전 3세기경 대부분의 인도지역을 통일한 아소카왕에 의해 불교가 세계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 아소카왕은 해외에까지 전법사를 보내 스리랑카, 미얀마를 비롯해 이집트, 그리스, 북아프리카까지 불교를 전파했다.

특히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로 이때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다. 자신의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중생들의 교화를 위한 보살사상을 우선하기 시작했다. 이를 대승불교라 한다. 대승불교는 이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거쳐 중국, 한국, 일본 등지로 전해지며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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