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종교 22] 태국④···불상·불탑·회화 등 볼거리 많아

<사진=신화사>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혜가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아시아엔=김홍구 부산외국어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태국 내 크메르의 예술품들은 롭부리(Lopburi) 양식으로 분류한다. 롭부리는 태국 내 크메르 제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롭부리 불상은 권위주의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데, 평평한 사각형의 얼굴, 일직선의 눈썹, 나가(Naga)에 둘러싸여 왕관을 쓴 것이 특징이다.

쑤코타이 불상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태국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걷는 불상(Walking Buddha)이 만들어져 독립국가의 진취성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특징은 화염 모양의 머리, 곱슬곱슬한 작은 머리카락, 아치형의 눈썹, 길고 가느다란 코, 은은한 미소, 마른 몸, 넓은 어깨이다. 또 가사는 왼쪽 어깨에서 배꼽까지 드리워져 있으며 V자형의 새김눈으로 마무리된다.

아유타야의 불상에는 15세기 뜨라이록까낫 왕 즉위 후 쑤코타이의 영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아유타야 고유의 양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7~18세기에는 크메르 양식이 도입되어 불상도 왕관을 쓰고 있는 권위주의적인 것들이 유행했다.

불탑···종 모양과 옥수수 모양

태국의 불탑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대체로 종 모양의 실론(스리랑카)식 스투파(Stupa)와 옥수수 모양의 롭부리식 스투파인 쁘랑(Prang)으로 나눌 수 있다.

회화···부처님 전생 이야기 담아

태국의 회화는 불교 포교의 수단으로써 다음과 같은 주제를 많이 묘사했다.

① 차독

부처님 전생의 이야기(본생담)로 태국에는 이 중 최후의 10가지 이야기를 묘사하여 테마로 삼은 것이 많다. 석가가 싯다르타 왕자로 태어나 중생을 구제하는 데 필요로 했던 도덕적 미담 10가지-거부, 용기, 애정, 결심, 분별, 인내, 영원, 평정, 정직, 자선-가 주요 내용이다.

② 뜨라이품프라루엉

불교 우주관에 따라 세 개의 세계-천국, 현생, 지옥-를 묘사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이 중 한 곳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이 작품은 쑤코타이 왕조의 리타이 왕이 처음으로 저술했는데 인간의 행복과 사회 · 경제적 지위는 업과 선행, 악행으로 결정된다는 가르침을 통해 왕권과 사회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③ 라마끼안

인도의 고전 서사시인 <라마야나>(Ramayana) 이야기를 태국식으로 편찬한 것으로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루고 도덕관념을 가르치고 있다.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함께 세계 최장편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다. B.C. 3세기경 발미키(Valmiki)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며, 그 기원은 B.C.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많은 태국본이 있었지만 1767년 아유타야가 버마에 의해 멸망할 때 소실되었으며, 현재는 라마 1세와 2세 때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현 왕조의 왕들이 라마(Rama)라는 명칭을 세습할 정도로 이 작품은 태국의 정치·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문화와 브라만교···브라만 사제 입헌혁명 후 급속히 감소?

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뿐 아니라 브라만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타이족이 1238년 크메르 제국의 속국 지위에서 벗어나 세운 쑤코타이 왕국의 3대 왕인 람캄행 대왕은, 크메르 브라만교의 영향력을 불식시키고 독립을 확고히 할 목적으로 스리랑카로부터 남방 상좌부불교를 도입해 왕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어서 아유타야 왕국을 건립한 라마티버디 1세는 절대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브라만교를 정치에 이용하게 됨으로써 불교는 사실상 브라만교와 혼합되어 발전되기 시작했다. 이후 랏따나꼬씬 왕국의 몽꿋 왕이 탐마윳띠까니까이를 만들어 불교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브라만교는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아유타야 왕조 때부터 랏따나꼬씬 왕조 중기까지 존속했던 많은 수의 브라만 사제들은 1932년 입헌혁명 후 크게 줄었다.

현재 태국 국민의 95% 이상이 불교도이며 승려 수는 30만명 이상이지만, 브라만 사제의 숫자는 십수 명 정도로 왕실 관할의 브라만 관련 의식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브라만교는 왕실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태국 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브라만교의 영향을 뚜렷이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관련 행사, 사원의 벽화, 조각물에 나타나고 있는 힌두 신들이나 신화 창조물 등을 통해서이다. 특히 쑤코타이 이래 오늘날까지 왕국의 수호신을 힌두교의 3대 신(神)인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nu), 시바(Shiva) 중 하나인 비슈누로 삼고 있으며, 왕국의 문장을 비슈누의 화신인 크룻(Garuda)으로 정하고 있는 데서도 브라만교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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