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⑥] 진 목공의 영토확장 ‘비결’···적장을 부하로 삼고, 배신자를 용서하다

진 목공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요여가 진목공의 복잡한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앞에서 작심한 듯 계속 말한다.

“그러나 융이의 습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법령과 예악은 없어도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래 사람들을 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충성과 신의로써 윗사람들을 섬깁니다. 상하가 한결 같아 서로 속이지 않습니다. 서로 속이지 않고 법을 글로 써놓지 않아도 서로 근심하는 법이 없으니

이와 같은 다스림은 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스림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진 목공이 옳은 말만 골라서 하는 요여와의 대화를 서둘러 마치고 즉시 백리해를 부른다.

“과인은 ‘이웃의 현인은 우리나라의 우환이다’라는 말을 들었소. 오늘 요여가 그 지혜를 융이를 위해 쓰고 있으니 장차 우리의 화근이 되지 않겠습니까?”

백리해가 즉각 주군의 심사를 헤아리고 거두절미 말한다.

“요여를 꼭 죽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를 우리 진나라에 주저앉히면 되지 않겠습니까?”

백리해의 한마디에 요여의 목숨은 붙어 있게 되었다.

요여의 탁월함과 담대함에 목공이 백리해와 더불어 요여를 얻을 계책을 펼친다.

머지않아 요여의 주군 융주 적반은 백리해의 미인계에 푹 빠져 정사를 망치기 시작했고, 목공은 백리해 등 중신들을 동원하여 요여를 귀국하지 못하도록 회유한다.

목공은 융주를 버리고 섬진에 남게 된 요여를 아경(亞卿)에 임명하고 건숙과 백리해와 함께 국정을 돌보게 했다. 이야말로 진 조정에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여는 두고두고 진 목공을 도와 진을 대국으로 만들어 나갔다.

목공은 요여의 계책에 따라 삼수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융국을 정벌하게 했다. 서융의 12개국을 멸하고 모두 섬진의 영토에 복속시켰다. 이로써 섬진의 영토는 1천리의 땅이 서쪽으로 새로 개척되고 진목공은 이제 당당한 서융의 패자가 되었다.

한편 목공이 나라가 어지러운 당진의 공자 이오의 부탁을 받고 백리해의 지원으로 그를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히도록 했다. 이 사람이 진혜공(晉惠公)이다. 그는 당진의 군주에 앉게 되면 하외(河外)의 다섯 개 성을 바치겠다고 약조했다.

그러나 일단 군주 자리에 앉게 된 당진의 군주 혜공이 약조를 저버리고 섬진의 목공에게 도와준 일에 감사의 말만 전하며, 목공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고 하외의 성을 할양할 수 없다고 통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신행위를 비난하는 신하들인 당진의 대부들을 모두 주살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당진은 혜공이 즉위한 이래 해마다 흉년이 계속되어 나라의 형편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섬진이 당진과 제일 가깝고, 섬진이 풍년이 들어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지은 죄도 있고 하여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당진의 식량원조 부탁을 받은 목공이 대신들과 논의하는데, 백리해가 말했다.

“인자(仁者)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틈타 이익을 취하지 않고, 지자(知者)는 요행을 바라고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양식을 보내 주어야 합니다.”

이에 목공이 멋있게 선언한다.

“나에게 빚이 있는 자는 당진의 군주이고 기아에 허덕이는 자는 그의 백성이라! 나는 군주로 인해 그 화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노라!”

다음해 겨울, 이번에는 섬진에 흉년이 들고 반대로 당진은 대풍이 들었다. 목공이 당진에 가서 곡식을 청하게 했다. 그러나 배신의 아이콘 당진의 혜공은 이를 기회로 하여 섬진을 치기로 한다. 목공 15년 기원전 645년 당진의 혜공이 군사를 일으켜 기근이 들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섬진을 공격한다. 목공은 순식간에 위험에 빠져 위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정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던 야인(野人) 3백여명이 갑자기 나타나 죽음을 무릅쓰고 당진군과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람처럼 나타나 당진군의 포위망을 풀고 목공을 구했다. 뒤따라온 섬진군은 그 여세를 몰아 당진의 혜공을 사로잡았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야인들이 과거 목공에게 입은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옛날 목공이 사냥을 나갔다가 애마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기산 밑에 살던 야인들 300여명이 훔쳐가서 잡아먹은 것이다. 진군 병사들이 그들을 모두 잡아서 죽이려 하였다. 이에 목공이 나서 “가축으로 인하여 사람을 해치는 법이 아니다. 말고기는 원래 술과 함께 먹어야 한다”며 오히려 술동이를 하사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한 일이 있었다.

목공이 이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당진 군주 혜공을 죽이려 하니, 주나라 천자가 그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용서를 청했다. “당진국은 우리 왕실과 동성의 나라”라고 했다.

당진 왕실 출신인 목공의 부인도 친동생인 진혜공을 살려 달라 애원하니, 목공이 대답했다.

“내가 애써 당진의 군주를 사로잡았으나 천자가 사면을 청하고, 또한 부인이 애타게 부탁하는데 차마 죽일 수가 없구나!”

혜공을 풀어준 목공은 그에게 약속에 대한 이행을 맹세시키고 귀국을 허락했다.

그해 11월에 혜공은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원래 목공에게 주기로 약속한 하외의 땅을 바치고 태자 어(?)를 인질로 보내왔다. 목공은 사랑하는 딸 회영(懷?)을 어에게 주어 부인으로 삼게 했다.

이로써 목공시대 섬진의 영토는 황하 서쪽에까지 넓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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