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47] 대학 동문회 ‘응원군’ 혹은 ‘자승자박’?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필리핀바로알기> <자유로운 새> 저자] A대학교 동문회에는 수호천사처럼 자기가 없으면 마치 동문사회에 큰 변고가 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 문제가 있는 곳마다 양쪽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양비론을 펼지는 자도 있다. 실제로 승대보다는 원규를 겨냥하여 예의를 거론하고 동문회의 이미지를 수호하겠다는 냄새를 풍김으로써 정선일의 꾸짖음은 멋들어진 동시에 위선적이었다.

그에 대해 원규는 동문 전체 메일로 답신을 보냈다.

정선일 동문님

메일 감사드립니다.

고승대가 지난달에 그런 메일을 보냈다는 것을 저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며칠 전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 동문께서는 그의 이메일을 받고서도 한 달 이상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듯한데, 왜 저의 해명 이메일에는 단 이틀 만에 경고 내지는 충고하시는 건가요?

설마, 정 동문께서는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고 제 명예를 심각하게 해치는 그런 메일이 동문들에게 전달되었는데, 제가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을 지켜 그 메일의 내용을 묵인하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많은 동문들에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메일이 왔는데도 동문들 중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제 스스로 나섰던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정 동문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허위사실을 동문들에게 유포했고 동문들 중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스스로 해명도 않고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고승대의 악성소문은 가만히 둬도 괜찮고 저의 해명은 가만히 둬서는 안 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정 동문께서는 모든 동문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동문들 중에는 단 한두 사람이라도 이 문제의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동문회 이름으로 저에게 충고하시는 거지요? 정 동문님의 개인적인 충고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또 감사하게 토 달지 않고 받겠습니다.

제가 해명하는 자료를 받고 좀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몇몇 동문들의 반응을 들은 바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향후에도 정 동문과 일부 동문들의 개인적인 입장을 모든 동문들의 입장이라며 내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동문들의 권위는 기수에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누구의 권위는 높고 누구는 낮은 게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합니다.

아이큐 천재 고승대와 수재 이문식은 서로 키득거리며 좋아 죽었다. 박수를 마구 쳐댔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것보다 더 통쾌하고 후련했다. 원규와 동문들 사이의 이간질과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씌운 올가미는 원규가 발버둥을 쳐봐도 스스로 벗지 못한다. 훗날 누군가가 그 올가미를 벗겨준다 하여도 상처받은 이미지까지는 벗겨주지 못한다. 옛날이야기에도 나오듯이 나무에 박힌 못은 빼줄 수 있지만 못 자국은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승대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뻑적지근한 가슴을 안고 이번에는 박인채를 혼내주기 위해, 필리핀 교민들이 많이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 “필고philgo” 게시판에 박인채의 실명을 거론하며 모욕 일색의 글을 올렸다. 물론 승대는 자신의 이름은 숨기고 익명으로 올렸다. 손쉽게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은 겁쟁이도 대담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인간사회는 아주 잘 굴러가는데, 인터넷은 훨씬 더 잘 굴러간다.

글의 내용은 교민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그의 특기인, 객관적인 사실 한 가지와 거짓 열 가지를 섞어 그럴듯하게 편집했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한 말을 승대의 아이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계속 되풀이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제 소문이 와자자하다. 소문은 소문을 낳아 스스로 못질을 하고 다닌다. 소문은 살아있는 세균처럼 가만히 둬도 스스로 끊임없이 번성하고 진화한다. 일단 소문이 떠돌면 소문의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이미지가 씌워진다. 그리고 소문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진실보다 훨씬 강하고 파급력도 크다. 게다가 소문에 있어서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는 바보가 있었던가! 소문 그 자체가 얼마나 고소한 안줏거리이고 재밌는 대화소재이던가!

‘효과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들이 즐거운 결과를 야기하는 행동은 반복하는 법칙이다. 승대라는 동물도 효과법칙에 잘 따르고 있었다. ‘매너리즘’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고 나면, 그는 한편으로는 그것이 편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성공을 했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그 방법을 사용하려 한다. 그것이 범죄에 적용되면 상습범이다. 승대는 스스로 상습법이 되어 막장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망가질 게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무서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A대학 동문에는 소문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바보’들이 승대와 이문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의외로 많았다. 특히 원규의 대학동기들 속에 바보들이 많았다. 동기들이 많이 모인 어느 상가 집에서 A씨가 원규에게 말했다.

“원규야.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아. 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다들 웃는다.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라도 그 놈을 피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 있던 B씨와 C씨가 낯을 붉히며 A씨의 말에 반대했다.

“아니야! 사람이 개를 패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개새끼가 사람을 패면 모두가 비웃어! 그런 미친 개새끼는 몽둥이찜질이 약이다! 개새끼가 못된 버릇을 안 버리고 버티면 죽을 때까지 패버려!”

미친개 어쩌고 하는 말이 들리자 원규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자신을 노려보던 승대의 눈빛에 어려 있었던 형언하기 어려운 적대감을 떠올렸다. 그 녀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미친놈일까?

“자네들, 창녀 때는 벗어도 도둑때는 못 벗는다는 말 들어봤어? 도둑질 하는 버릇, 거짓말하는 버릇, 사기 치는 버릇은 못 버린다는 뜻이야. 이문식과 고승대 같은 사기꾼들은 피할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영원히 추방시켜 버려야 해!”

곁에서 듣고 있던 동기생들이 B씨와 C씨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원규의 대학선배 김동환 사장이 유럽 출장 중에 소문을 접하고 원규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사이버 공간에 퍼져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 마법에 걸린 화살 –

먼 옛날 한 신이 화살에 마법을 걸었는데 그 마법은 화살이 끝없이 세상을 돌며 사람들을 차례로 쏘아 죽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화살에는 숨어있는 마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살을 쏘아 상대방을 다 죽이고 나면 결국 되돌아와서 그 화살을 쏜 사람마저 죽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모든 사람들이 화살에 희생되었는데…… 그 화살은 이제 신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신은 자신이 마법을 건 그 화살을 피해 다니느라 영겁의 세월을 바쳐야 했는데, 그 화살의 이름은 바로 “험담“이었다.

이렇듯 “험담”이라는 활시위는 상대방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자신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험담의 대상자, 험담을 듣는 자 그리고 험담을 하는 사람 모두를 죽인다는 “험담”.

험담을 하는 자는 나쁜 사람이고, 험담을 들어주는 자는 멍청한 사람이며, 험담을 옮기는 자는 바보다.

다음날, 부산남부동문회의 원로 전성환 사장이 원규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남부동문회 전체에게는 참조로 보냈다. 승대가 처음 보냈던 이메일 리스트에는 전 사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윤 사장,

자네와 고 후배 사이에 분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네. 간단하게 내 의견을 전하네.

나는 구식이고 늙은이어서인지 동문 선후배 사이에 평등하게 친구처럼 지내자는 자네의 평소 소신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선배들에게 했던 기수에 따른 장유유서를 후배들에게 기대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네. 일부 다른 동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네. 우리가 흔히 얘기하듯이 자네와 나의 생각과 소신은 다른 것이지 어느 누가 틀리다고 말하지는 않네.

그리고 지금 왈가불가하는 것과 관련하여, 고 후배가 먼저 자네를 공격했으니 자네의 해명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증거를 제시하며 고 후배 메일의 내용이 허위라고 주장했으니, 고 후배도 그에 대한 반박 증거 내지는 애초에 주장했던 윤 사장의 범죄행위와 추악한 사생활에 대해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네. 그래야 공평한 것이지.

만일, 누구든 근거 없이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면, 동문들 전체 앞에서 남자답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는,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거든.

개인적으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다를지라도, 그 사람이 무고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고 싶어서 메일을 보내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