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서산 출신 제주 명예도민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이생진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윤동주문학상, 상화(尙火)시인상을 수상했고 2001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로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세상 어떤 거든 실재하는 것 모두는 각기가 고유명사다. 사람·개·바다·산·봉우리 등과 같은 유명론(唯名論)적인 단어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다만 실재하는 것을 총칭해서 나타내는 일반명사일 뿐이다. 그러나 실재론(實在論)적인 것들은 각기 다 고유명사다. ‘영수’와 ‘영희’가 그렇고, ‘뽀삐’와 ‘남해’,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 등이 그렇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의 일출은 장관이다. 그 황홀하고 장엄한 불덩어리가 하늘을 뚫고 떠오르는 모습은 가히 필설로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을 두고 시인이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만큼 성산 일출봉의 해는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평생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산 일출봉’에서 뜨는 ‘일출봉의 해’는 세상을 대표하는, 세상의 유일한 해일 수가 있다. 시인은 일출봉의 해를 고유명사로 읽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가 언제 누구와 어떤 일로 만나더라도 그를 ‘누구’라고 하는 고유명사로 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해를 보는데 아무 생각이 없이 본다”고 한다.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보는 세상에서는 해와 바다, 밤과 달, 일출봉과 나,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한다. 그런 세상에서 살다가 저 세상에 갔는데 거기에 바다가 없어 실재들이 분리된 채로 다가오면, 만물일화(萬物一華)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오자고 한다.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으며(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인(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법성게) 세상으로 다시 오자”는 것이다.

일출봉에 서면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데 저승에 면 어떨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인의 상상력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성산 일출봉을 통한 화엄의 세계를 본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81편 중 발췌)

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 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버린다(65번)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37번)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