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수아드 알사바 시인의 ‘쿠웨이트 여자’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내가 시집 <쿠웨이트 여자>(아시아엔 2013년 발행)의 수아드 알 사바 시인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3월이었다. 쿠웨이트 공보처가 주최하고 <알 아라비 매거진>이 주관한 ‘Arab’s Go East’ 포럼에 초청받아서였다. 당시 포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이란·이집트·모로코 등 중동지역의 언론사 대표와 외무부 전현직 고위관리 60여명이 초청됐다.

비아랍권에서는 필자와 당시 아시아기자협회 회장이던 아이반 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와 장홍희(章鴻義) 중국어언(語言)대학 아랍어학과 과장이 초대받았다.

포럼 마지막날 주최측은 “오늘 만찬은 쿠웨이트 공주 자택으로 이동해 갖는다”고 했다. 필자 등은 ‘아, 공주라면 20대 아니면 30대쯤 됐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 걸, 말 그대로 으리으리한 저택단지 그녀의 집에 도착하여, 그 공주가 70대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 옆에는 젊은이 둘이 손님들을 맞았다. 40대 초반의 아들들이었다. 전날 왕실에서 왕세자와의 면담 직전 만났던 이가 반색했다. 필자와는 구면으로 공주의 작은 아들이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공주는 “한국,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듣고 있다.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하며 내게 시집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만찬 후 그녀는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배웅하며 입장할 때 내게 약속한 시집을 잊지 않고 준비해 놓고 있었다. 모두 20권에 이르렀다.

귀국 후 단국대 장세원 교수에게 시집을 보여줬다. 장 교수는 “시가 무척 좋다”며 번역하여 출판하자고 했다. 장 교수는 한국외대 이동은 교수와 공역을 하여 한국에서 최초로 쿠웨이트 시가 <쿠웨이트 여자>란 이름을 달고 시집으로 번역·출판된 것이다. 2013년 2월10일 일이다.

만해대상 심사위원인 필자는 수아드 알사바 시인을 2012년 문예부문 수상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그해 8월12일을 한달쯤 앞두고 시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스터 리, 시상식에 꼭 참석하고 싶은데, 60대 중반의 하나뿐인 남동생의 병이 중해 도저히 어렵겠네요. 정말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그리고 상금 5만달러는 고아들에게 기부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해 가을 필자를 자신의 집으로 다시 초대했다. 기자는 알파고 시나씨 터키 기자와 왕수엔 중국 기자를 동행해 터키로 날라갔다. 시인은 동생의 병간호를 위해 영국에 머물고 있어 만나지 못했다. 그녀 대신 두 아들, 즉 큰아들(무바라크) 당시 공보처 장관 겸 내각실장, 작은아들(무함메드)이 필자 일행을 맞았다. 그때서야 필자는 그녀가 쿠웨이트 최대기업 중 하나인 액션그룹홀딩스 회장이며 작은아들이 그 회사 부회장이란 사실을 알았다.

시집을 받았을 당시 그녀의 신분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번역을 맡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의 남편이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 중 숨진 사실, 그녀가 2005년께 쿠웨이트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에 앞장선 사실 등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됐다.

1942년 쿠웨이트 알사바 왕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961년 첫 시집 <아침 섬광>을 낸 후 <내 인생의 순간들> <태초에 여자가 있었다> <장미와 권총의 대화> <조국에 보내는 긴급전보> <모든 시는 여성적이다> <분노의 꽃들> 등의 수많은 시와 시집을 발표했다.

1990년 이라크 침공때 낸 <내 조국을 사랑해도 되겠습니까?>는 걸프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해 국내외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또 <그대 멀리 떠나고>는 2001년 ‘아랍시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영국 써리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학 서적 14권과 논문 150여편을 발표했다.

저자 서문의 마지막 대목과 이 책의 제목을 낳은 ‘시련’의 첫 소절과 끝 소절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시는 한 영혼에서 다른 영혼으로 주행하는 재빠른 빛과 같습니다. 나는 여기서 쿠웨이트의 갈매기가 되어 한국의 강뚝으로 날아갑니다. 한국은 걸출한 작품을 지어낸 진지하고도 빛나는 문화인을 낳은 멋진 나라입니다. 부디 내 사랑을 받아주시기를.”

 

 

시 련

나는 쿠웨이트 여자입니다. 걸프지역의 딸입니다

드높은 열정의 소유자랍니다

나의 피는 알 사바 가문의 긍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의 딸들과 아들들이 그 가문의 후손이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독재 치하에 놓이다니요?

그들이 귀한 우리 자손들을 짓밟다니···

 

그대여···그대여···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들이 당신을 구렁텅이에 밀어넣지 않도록···.

 

덧붙임

힘드시지요? 수아드 알 사바 시인의 시가 당신에게 위안을 줄 겁니다.

모르셨지요? 이 책을 통해 이슬람과 아랍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떡할까요? 아시아 서쪽과 동쪽, 이슬람과 이웃종교가 만나 머리를 맞대면 됩니다.

수아드 시인이 그 길을 안내합니다.(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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