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군대①] “아직도 SNS 안 하는 당신은 ‘주라기’ 사람”

[아시아엔=이원섭 마컴 빅데이터 큐레이터]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휴대폰을 켜고 SNS를 확인한다.

오늘은 또 무슨 생각들이 올라왔을까? 어제 이런 이슈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등등 나와 다른 프레임의 의견들을 보고 느낀다.

그 다양한 생각과 이슈들에 대해 댓글을 달거나 가르칠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해 소위 말하는 눈팅 정도만 하고 좋아요, 공감 정도는 표시하고 있다.(어느 분들은 이 좋아요나 댓글을 다는 게 귀찮아 SNS를 아예 안하신다는 분들도 있다. 누구는 댓글을 달고 누구는 안 달아주면 차별한다고 싫은 표시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생활에 SNS가 얼마나 가깝게 다가와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는 마당이 이렇게 변화한 것이다. 내 경우와 비교해도 통계자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을 카카오톡보다 더 중시하고 다음 카페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대세의 물결은 동등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작은 세상의 소리들을 듣고, 밴드나 카카오톡을 통해 벗들과의 공감을 하고 다음 카페의 회원들과 취미를 공유한다. 꼭 만나지 않아도 이 SNS의 가상의 공간 속의 미팅을 통해 그들과의 공감과 친밀도를 높여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더니 나와 같이 시기에 학교도 다니지 않아 마주친 적이 없는 10여년 후배가 먼저 다가와 아는 척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평소 내 생각과 취미에 대해 말하며 급격하게 친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도 다 이 SNS의 힘이다. 분명 이 친구는 내게 댓글이나 좋아요 등 자기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나타낸 적은 없지만 온라인 아닌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금방 친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참 고마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분명하다.(온라인에서 내 글에 반응이 없거나 댓글이 없다고 그것이 전부인 양 알았다면 이 후배와 같은 동질감을 갖지 못했을 거다)

내가 자주 쓰고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네트워크 군대’다. 네트워크 군대(network army)는 일반 군대처럼 무기를 들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의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 집단이다. 네트워크 군대의 중심이 SNS다. 위 그림의 각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이 다 네트워크 군대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2010년 튀니지의 한 청년이 물가폭등과 장기간의 독재에 항거해 분실 자살한 후 23년간 집권하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사건을 튀니지의 국화인 재스민에 빗대어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이라고 한다. 이 재스민 혁명도 네크워크 군대의 힘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재스민 혁명의 파워를 가장 경계하는 나라가 중국이고 최근 김정남 테러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북한인데 물리적인 통제보다 더 무서운 인터넷 통제를 통해 아예 네트워크 군대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천안문사태처럼 오프라인에서 깃발을 흔들고 시위하거나 또는 튀니지처럼 분신을 하거나 하는 형태와 더불어 SNS를 통한 서로간의 강력한 의사 표현과 비공개된 정보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오프라인의 군대보다 더 무서운 파워와 존재감을 갖는 게 네트워크 군대다.

혹자들은 SNS 채널들은 하나의 도구 역할만 했지 변화에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일견 의미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이나 북한이 두려워 사전 통제나 차단을 하는 현실은 정권이나 기득권 세력의 일방적인 정보에만 익숙했던 민중들이 자기들끼리의 가공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리얼 팩트들을 보고 판단한다는 두 개의 눈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주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집권세력들이 자기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주고 싶은 정보만 주는 가공성이 있는 통제된 오프라인의 정보들을 네크워크 군대의 군인(?)들은 현장의 정보를 생생하게 인터넷 중계 등을 통해 정권처럼 가공하지도 않고,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는 진정 순수한 사실(팩트)만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판단권과 결정은 상대에게 주고 있는 것이 네크워크 군대의 가장 큰 장점이고 확산되는 포인트다.

즉 실제 군대는 상관의 일방적인 명령에 의해 움직이지만 네크워크 군대를 움직이는 힘은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다. 정권이 주는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와 네크워크 군대에서 나오는 인포메이션 두 가지를 다 수용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네트워크 군대가 사랑을 받고 파워를 가지는 이유다.

지금 이 빅데이터 시대에서 네크워크를 통제하고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SNS의 소우주에서 하루에도 수십억 건의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을 왜곡하겠다는 생각하는 자체가 시대를 역행하고 진실을 가리고 망치려는 나쁜 의도 이외에는 없다고 보면 된다. 생각해 보시라.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에서 몇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하루에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데이터의 양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신문, 잡지, 방송, 책, 강연, 대화 등을 통해 한정적이고 앞에 말한 것처럼 일방 주장의 정보만 획득하다가 양방의 정보들이 넘쳐나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한 수많은 정보들이 입력되면서 더 힘들고 혼란스럽지는 않으신지? 그리고 양면적(혹자는 양비론, 흑색론이라는 도전적 말을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생각을 잘 섞어 중용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내 경우, 매일 받아들이는 데이터들은 인터넷(신문도 인터넷으로 본다)이 일상 대다수다. 몰론 넘쳐나는 종편이나 라디오, 책, 강연, 만남 등을 통해 습득하는 데이터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수용된 데이터들은 모바일 기기들을 통해 앞선 통계에 나와 있는 SNS를 통해 공개하고,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고 있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10대의 이야기도 듣고 20, 30, 40대와 또는 나와 동년배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나누며 다양하게 판단할 수 있고 나름의 결과를 도출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일방적인 생각이나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거꾸로 나와 같음을 같음으로 뭉치게 하는 네트워크 파워 같은 느낌도 갖게 된다. SNS 커뮤니케이션은 여간 즐거운 일상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신문, 방송, 책 등을 통해 얻었던 데이터들을 좀 더 다양한 새로운 경로와 채널을 통해 동시에 수용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게 하는 행복한 채널이 분명하다. (중용적 판단은 흑과 백의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라 약간 흑, 약간 백, 중간 흑, 중간 백 등 다양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있음을 말한다)

미국 한 리서치 통계를 보면 고학력, 고소득층일수록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 광고 등 전통적 채널 시장의 급락 이후 TV 광고 시장도 같은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게 한다.(현재 TV 광고도 인터넷 매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몇 년 전 통계이지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와 지상파 TV 광고 시장의 급격한 하락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바침하고 있다. 실 데이터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 CNN이나 Fox 뉴스와 같은 케이블 네트워크 뉴스는 43%에서 36%로, NBC나 CBS같은 지상파 뉴스는 30%에서 22%로 그 수치가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는 현상이 나타났다.(2015년 이후 이 수치는 더욱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를 굳이 가르지 않더라도 정보의 소비자들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SNS로 이동하고 있고 정보의 가공성(매체사들의 논조나 편집방향)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 데이터들을 더 선호하고 그 쪽으로 이동하겠다는 의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것이 현실적 추세이며 이를 직시해야 한다.

주는 정보, 가공된 정보, 상관의 일방적 명령 같은 정보는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고 선호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SNS 커뮤니케이션으로 무장한 네트워크 군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무섭게 조직되고 그들의 파워가 가공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고 있는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무 것도 이 파워에 대항할 수 없고 또 막을 수도 없다. 이것에 대항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팩트와 진실성뿐이다. 가공하고, 왜곡하고, 명령할 수 있다는 사고로는 더 이상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없다고 보면 된다.

SNS 채널들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열광하는 이유는 의도된 가공성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전달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속보성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수만명의 친구들에게 순식간에 전파되고 다시 이 데이터들은 또 다른 친구들에게 전달돼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수백만명에게 전파되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되었다.

SNS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좋은 면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팩트와는 정반대의 페이크(fake)의 데이터들도 요즘 활개치고 있다. 기존 미디어의 게이트키퍼 역할이 없어 거짓이나 잘못된 데이터들이 진실인양 급속하게 전파되어 혼란과 부정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뉴스나 SNS에서 자주 본다. 몇몇 정치인들이 이 페이크 뉴스를 진실인 양 이야기하다 곤혹을 치르는 것을 봤을 거다.

하지만 이것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네트워크 속의 상호간의 거짓과 부정을 지적하는 정해지지 않은 다수의 게이트키퍼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기들끼리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팩트와 페이크를 구분하는 자정작용(self organization)이 일어나고 있어 편협하고 서두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태도만 가진다면 역기능도 순기능화할 수 있다.

팩트만 전달하고 진실되고 과감하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면(논쟁을 유도하는 자기주장은 가능한 한 삼가한다) SNS 세상은 분명 다양한 지혜를 듣고, 보고, 배우는 중용지도의 선생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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