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김혜순 ‘지평선’···경계선 너머 그들의 삶에 사랑과 관심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김혜순 시인은 경북 울진 출생으로 <또 다른 별에서>부터 <피어라 돼지> 등에 이르는 1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기발하고 기괴하기도 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언어선택과 강렬한 이미지로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는 시를 썼으나, ‘김수영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낯설고 이색적이라는 그녀의 시세계가 문단의 공인을 받게 된다.

사실 지평선은 우리가 설정한 인위적인 선이다. 지평선은 없다. 눈꺼풀의 경계선도 그렇다. 물론 지평선이나 눈꺼풀의 경계를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보면, 땅 아래와 땅위가, 윗 눈꺼풀과 아랫 눈꺼풀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지만 그 경계는 땅(눈꺼풀) 아래에도 속한다고 볼 수도 있고 땅(눈꺼풀) 위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묘한 지점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은 선이 지평선이라는 노장(老莊) 식의 해석이 일면으로는 옳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정효구씨는, “사람들이 흔히 지평선을 맞닿은 것으로 바라보는데 비해 김혜순 시인은 쪼개진 상태라는 데 주목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그 갈라진 틈에서 핏물이 번져 나오는 것을 보고서, 인간의 오욕칠정을 무가치한 것으로나 배제해야 할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러한 감정의 지극함을 현실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녀는 낮의 매가 되고 그는 밤의 늑대가 되어” 엇갈린 채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을 처연하게 수용한다.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둘로 갈라져 있다. 그리고 그 분리된 세계는 통합이나 일치가 거의 불가능하다. 갈라짐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고···눈물이 솟구친”다. “상처(지평선)와 상처(눈꺼풀)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힌“다.

시인은, 우리 문명이 처한 현실에서 인간은 결국 그 단절의 경계 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 받은 존재임을 그 특유의 면도칼 같은 어법으로 묘사한다.

 

지평선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 눈꺼풀과 아랫 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 낮과 검은 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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