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영원한 사진기자 김종수를 그리며

김종수 <한겨레> 기자가 19일 오후 11시2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46.

1966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한겨레신문사 사진부에 입사했다. 2006년 ‘제42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현장 사진기자로 활약했다. 국회와 청와대 출입기자를 거쳤고 2010년 사진부 섹션팀장을 지냈다.

고인은 지난해 3월초 췌장암 진단을 받고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내 정희경(전 <여성신문> 기자)씨와 딸 여경양·아들 보건군이 있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이다. 발인은 22일 오전 예정이다. (031)708-4444.」(2012년 2월20일자 한겨레신문 27면)


김종수 후배, 아니 종수야.

어제 너의 빈소에서 우린 ‘해묵은 기분 좋은’ 말씨름을 벌였다.?

-기자는 잡놈이야.
-맞아, 잡놈이야.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잖아.
-아냐, 기자는 정말 잡놈이야. 잡놈이라야 해.
-무슨?
-기자는 자기가 선비가 아니라 독자들이 선비로 살아가도록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
-그래도···.
-선비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기자가 아냐.
-그래?
-그럼, 그렇지. 기자는 누가 뭐래도 잡놈이야. 잡놈이어야 해.?
-그래도 우린 겸손한 잡놈! 잘난 척하는 선비보다야, 그게 낫지, 음.?

우리는 그렇게 ‘기분좋게’ 말씨름 시작해 만장일치 합의로 ‘더 기분좋게’ 결론 봤다네.
“김종수도 철저한 잡놈이었지” 우린 한 목소리였다네.
하긴 우리 기자들을 총칭하는 보통명사에 답이 나와 있지 않은가? 쓸 ‘기’에 ‘놈’ 자, 記者.

내가 한겨레신문 공채1기, 그대가 6기.

아직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던 때, 신문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던 시절 한 배를 탔던 것이지. 후배가 취재 마치고 들어와 앉아있던 사진부건 혹은 정치부, 사회부, 편집부 등 내가 옮겨다닌 부서건 우린 제법 뱃속이 맞았던 것 같아.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보태진 거겠지. 나는 무엇보다 자네가 통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좋았던 것 같으이. 무엇보다 치열하게, 속임 없이 ‘기자질’ 하는 게 또 좋았지.?

작년 자네 병중에 세 차례 통화하곤 문병 한번 못한 내가 참 원망스럽네.
그때마다 왜 종수목소리가 그리 씩씩한지.
“이 선배, 곧 나을 거니 걱정마세요. 나가서 만나시죠.”
그 말 순진하게 믿고, 바쁜 척한 내가 한없이 한심하기만 하네.?

어제 자네 영정사진 활짝 웃는 모습이 내 미안한 맘을 더해 주었다오.
국화꽃 아래 성경책 양쪽에 놓인 자네 안경과 시계가 유독 눈에 들어옵디다.

종수 후배.

이제 그곳에서 마감시간 쫓기지 말고, 자네 찍고 싶은 사진 편하게 많이 찍으시기 바라네.
막걸리 한잔 안 하곤 못 쓸 것 같아 서울막걸리 들이켜고 이 글 적네.
한번만 딱 한번만 더 자네 목소리 들려줄 수 없겠나?

“이 선배 막걸리 한잔 하러 나가시죠!”
“응, 그래 종수 어여 들고 한잔 따라봐.”

영원한 기자 김종수, 잘 가시게.

2012년 2월 22일 밤?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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