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붓다의 ‘숫타니파타’···목우가 사자후를 겁내지 않듯이

%eb%b6%93%eb%8b%a4-%ea%bd%83%ec%9d%b4_%ed%94%bc%eb%8b%a4_i_130-3x162cm_oil_on_canvas_2014_2[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초기 불교 경전에 속하는 것들 중 <법구경>과 <숫타니파타>는 짧은 시로 엮어져 있다. 흔히 소승불교는 혼자만 득도하려는 이기적인 불교이고 대승은 함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이타적 불교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소승은 “나라도 깨달음에 이르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고 대승은 “함께 득도하여 함께 열반에 이르자”는 것이다. 대승이 오히려 위험도가 높을 수 있다. ‘함께 함’을 강조하다 함께 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일상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상시 ‘싸띠’(awareness:일상적으로 깨어 있음)가 수행의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화엄경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人 一道出生死)라는 말처럼, 일체에 걸림이 없이 생사에 구애됨이 없이 깨달음 혹은 도에 이르는 것이 수행자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숫타니파타>는 대중의 입에서 벗어나, 나무로 된 소가 사자후를 겁내지 않듯이, 흐르는 물이 어떤 뜻을 갖지 않듯이, 떠다니는 구름이 마음을 내지 않듯이 그렇게 무심(無心)으로 자연스럽게 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럴 때 사막에 꽃이 피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 수 있다. (<숫타니파타> 성자 편 213번)

홀로 행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수행자,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아,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남을 끌고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을 진장한 성자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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