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김창수 ‘꽃은 어디에서나 피고’···간이식·뇌·심장수술 이겨낸 ‘서사’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아시아엔>에 ‘시인의 뜨락’을 연재하고 있는 김창수 시인이 최근 시집을 냈다. ?<‘꽃은 어디에서나 피고>(문학들).

살기 싫어 가른 배는 가엾고

죽이기 위해 가른 배는 불쌍하다

살고 싶어 가른 배는 안타깝고

대의를 위해 가른 배는 숭고하다(하략, ‘배를 가르는 것은’)

고재종 시인은 김창수 시인과 시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최근 죽음의 집에서 돌아온 이력을 추구한다. 심장판막수술, 간이식수술, 뇌수술 등 인간 신체의 핵심을 담당하는 곳에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낸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실존의 고독과 고통에 대한 진정성과 핍진성의 극한 기록이 이 시집이다.?

 

다섯 살 네게

아들, 아빠 죽거든 엄마와 동생 잘 부탁해

아빠의 첫 유언으로

너는 그렇게 장남으로 자랐다.

(중략)

스물여덟 내게 다시

아들, 막냇동생

이레 시집갈 때 손잡고 들어가

또다른 내 유언을

아빠 편히 가라는 말로 답하는

이미 너는 어른이었다.(하략)큰 아들에게

 

‘허병섭 목사님!’이란 제목의 시를 보자.?2012년 3월29일 소천한 허 목사를 그리면 쓴 시다.

(전략)

마지막 가는 길 옷 한 벌 남기지 않았습니다

죽어 묻힐 무덤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알아 볼 정신 한 올 남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살아서는 아무런 빚도 남기지 않았습니다(중략)

그는

죽음을 살아서

죽음을 이긴

자유인이었습니다.

 

‘화사한 장례식’은 김창수 시인의 삶의 태도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어머니, 80살 꽃상여면 호사가 아니던가요?

군수 화환 하나만 덩그렇게 놓여 있고

마음 담은 십여 명 남짓 문상객만 있어도

봄날 진달래 지천일 때 지화자 아니던가요?

상주는 전신관절 휠체어 탄 50대 딸래미에

화환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오히려 욕될 것 같아

어머니, 오늘은 국화꽃 한 송이로 당신을 땅에 묻습니다. 당신 딸 옆에 제 마음도 두고 가고

짬 내어 친구 휠체어 밀어주려 오렵니다.

 

내가 존경하는 이해학 목사도 시에 등장한다. 제목은 ‘이해학 목사님!’.

(전략)

하나님이 김창수를 살려주실 거라고

이 중환자실에 있는 모든 환자들도 살려달라고

당신은 어디 가고 기도만 남기까지

그렇게 우렁차고 깊은 목소리로 간절히 외쳤다지요.

왜 모금운동 하지 않느냐고 주변 사람들 꾸짖으시며

평생 빈털터리로 빚만 덩그렇게 남은 김창수를 살리려면 지혜 학도와 대안교육 하는 사람들과 기장 목사들에게

김창수가 살 만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 살려보자고

그렇게 비장하게 부탁하셨다지요.

(중략)

간 수술, 심장수술, 뇌수술로 들어간

비용을 마련하였다지요.(하략)

시인 김창수는 이 시집 <꽃은 어디에서나 피나>(문학들) 머리말에서 어려서 잃은 친구들을 기억해낸다. 아니 그들의 죽음은 이후 50년 이상 시인의 삶을 붙들어 맸다. 80년 광주와 이후 독재시절 겪은 선후배의 죽음과 함께.

시집은 이렇게 시작한다.

친구 ‘용’이가 죽었다. 일곱 살 때였다. 동네에 홍역이 돌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회복되었지만 하필이면 내 가장 친한 친구 ‘용’이는 떠나갔다. ‘용’이는 소설처럼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 그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친구를 상실한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기서’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일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보니 ‘기서’가 수영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단다.

시인은 “인연이 닿지 않은 존재의 죽음은 여전히 슬프고 그립고 아프다”며 “특히 죽임당한 존재들에 대한 슬픔과 아픔과 분노는 시간이 지나 더해져도 삭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덧난다”고 했다.

2016년 연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특히 병상에 누워있는 환우들에게 김창수의 <꽃은 어디에서나 피고>가 실낱만큼이라도 희망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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