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뜨락] 도종환 ‘담쟁이’, 결국 불가능의 벽을 넘는다

hiedra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한빛고교 교장, 녹색대학 교수]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결성에 동참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암으로 아내를 잃은 후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아들을 두고서 말이다. 그때 그는 담쟁이를 생각했다.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불가능의 벽을 넘는 바로 그 풍경을.

민중은 얼핏 오합지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각자 하나하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앞서가는 담쟁이 이파리 하나를 따라간다.

앞서가는 담쟁이 이파리 하나는 정의와 진실이요 사랑이다. 그렇게 첫 걸음은 이파리 하나지만 두 걸음에 이파리 열이, 세 걸음 네 걸음에 어느덧 이파리는 도도한 강물로 흘러 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평지로 만든다.

평지는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이다.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하려고 광주 5·18 민주광장에 나갈 때마다 우리는 희망의 이파리를 도처에서 본다. 광주에서 서울에서 부산, 대구 대전에서, 우리들 가슴 속에서!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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