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훈의 콘텐츠형인간] ‘이야기’에 목 매는 콘텐츠들

얼마 전,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제작사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예선에 참가해서 심사가 힘들었다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예선의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2차 예선의 심사위원은 2인 1조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음악관계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방송 작가였다는 것이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방송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실제 방송은 가수가 심사하는 3차 예선부터 보여주었다) 2차 예선부터 작가가 선발에 참여하도록 했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그 단계에서부터 살펴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스토리’와 ‘캐릭터’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살펴서 나중에 좀 더 높은 단계로 진출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혹은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올해 <슈퍼스타K>에 대해서는 유달리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이렇게 출연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야깃거리를 최대한 이끌어내니 시청자를 궁금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 <방자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방자전>에는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노련한 선배 벼슬아치로부터 그냥 보통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이몽룡에게 “뭔가 사람을 감동시킬만한 이야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한다.

영화는 이렇게 해서 변학도의 폭정과 춘향의 수절을 둘러싼 소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필요했던 이몽룡이 조작하고 만든 각본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방자전>의 김대우 감독이 애초에 작가로서 영화계에 입문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야기에 대한 그의 집착을 이해할만 한다. 감독의 전작 <음란서생> 역시 야한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고심하는 양반이 주인공 아닌가?)

오늘날 방송이건 영화건, 콘텐츠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비판은 이야기에 대한 것이 되어 버렸다. 대규모 자본을 쏟아 부었거나 야심찬 기술력을 선보인 3D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때마다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탄탄한 이야기가 콘텐츠의 질을 보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부작용을 만들어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작위적인 설정과 무리한 진행 때문에 욕을 먹는 막장 드라마도 결국은 이야기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능력 부족이 버무려져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만 강조하다보니, 모든 콘텐츠에서 이야기만을 주목하고 찾아내고 만들어내려 한다. <나는 꼼수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나는 꼼수다>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나는 꼼수다>가 영 못마땅한 사람들은 <나는 꼼수다>의 콘텐츠를 그들이 쏟아내는 “각종 의혹과 유언비어(혹은 괴담)”라고 생각한다. 아무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을 마구 내던져서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꼼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등장했다가 금방 사라진 <너는 꼼수다> 역시 제대로 된 ‘이야기’, 진정한 ‘문제제기’를 콘텐츠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의 팬들에게 <나는 꼼수다>의 콘텐츠는 ‘이야기’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진행자 김어준이 자신의 책에서 직접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보냐고. (…) 아니야, 달을 자지로 가리키면 자지를 본다. 태도부터 콘텐츠다. 그래서 난 좋은 콘텐츠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을 애티튜드라고 생각해. (…) 말의 내용 이전에 말의 형식부터가 콘텐츠야. 형식은 내용에 선행해서, 의식이 그 내용을 수용할 자세를 지정해준다.”

<나는 꼼수다>의 형식적 신선함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이 들어서 식상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 형식을 제대로 가져다가 활용한 다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나는 꼽사리다> 역시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슷한 수준의 ‘의혹’과 풍자에도 불구하고 <나는 꼼수다>가 벌여놓았던 판만큼 자유롭고 재미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에서 이야기만을 말하고 이야기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는 이야기 그 자체보다 이야기를 늘어놓는 ‘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목이 비슷한 <나는 가수다>의 성공 요인 역시 좋은 가수가 좋은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해주는 그 ‘판’에서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콘텐츠에서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수업시간에 늘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풀어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판’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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