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교토의 마이코?

사춘기 딸아이와 함께 교토의 가을을 찾았다. 794년 헤이안쿄(平安京) 천도 이후 교토는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무사가 중심이 되는 긴 역사 속에서도 교토는 수도로서의 자리를 지켜왔다. 천년의 고도 교토는 특별하다. 교토의 사찰과 신사, 가옥, 거리는 예전의 그 자리를 고집하고 그대로 존재한다.

교토의 가을이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단풍 절정기가 11월 중순부터 12월이라고 하니 이제 곧 그 화려함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교토라고 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것만 해도 도지(東寺), 니죠죠(二?城), 킨카쿠지(金閣寺), 긴카쿠지(銀閣寺) 등 17개나 되고, 수많은 사찰과 신사 등 이름만 들어도 찾아보고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 모녀는 욕심을 버리고 마냥 걷기로 했다. 사실 교토는 짧은 일정에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열심히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감동이 없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명소는 언젠가 다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딸아이의 보들보들한 손을 잡고 교토를 거닐 수 있는 날을 기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건 내 생각이고, 딸아이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아프다니, 여기나 저기나 다 같은 절이라 지겹다니…. 손을 잡기는커녕 엉덩이를 쑥 내밀고 오리걸음을 하면서 따라오는 둥 마는 둥.

작은 사찰과 가옥들이 이어진 한적한 골목길에서, 꽃무늬 화사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높은 오코보(나막신)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갑자기 얼굴이 환해진 딸아이가 카메라를 들고 쫓아갔다.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화려한 머리장식에 길게 늘어뜨린 다라리오비, 긴 소매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은 분명 ‘마이코(舞妓)’다. 정식 게이코(芸妓, 교토의 게이샤를 일컫는 다른 말)가 되기 위한 수련생이다. 실례가 아닐지 염려되었지만, 나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마이코 옆에서 V자를 그린다. 마이코 역시 V자를 그렸다.

교토의 한 거리에서 만난 마이코

‘게이샤’, 그 신비로운 단어에서 혹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고마코를 떠올릴 것이며, 혹자는 장쯔이 주연의 <게이샤의 추억>을 생각할 것이다. 게이샤는 악기연주와 노래, 춤으로 술자리의 흥을 돋고 손님을 접대하는 여성이다. 일본의 전통 ‘기생’인데,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매춘부나 유녀(遊女)와는 구분된다. 정식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도쿄의 경우는 6개월에서 1년, 교토는 5년이라는 긴 수련 기간을 요한다. 이 과정의 견습생을 도쿄에서는 ‘한교쿠(半玉)’ 또는 ‘오사쿠(御酌)’, 교토에서는 ‘마이코’라 한다. ‘춤을 추는 기녀’라는 뜻이다. 전통음악과 무용만이 아니라 다도, 서예, 문학, 시에 이르기까지 전통예술을 익힌다.

정식 게이샤가 되면 견습생일 때와는 달리 짧은 소매의 수수한 기모노를 입으며, 화장도 특별한 때만 하얗게 칠한다. 교토에서는 게이샤 정통을 중요시하며 엄격한 수련과정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게이샤라 하지 않고 ‘게이코’라고 특별히 달리 부른다.

‘게이샤’는 원래, 17세기 음주와 매춘이 이루어지는 유곽에서 음악과 무용으로 손님을 즐겁게 하는 남자 예능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훗날 이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게 되는데, 에도시대 중엽 유녀보다 인기를 끌면서 게이샤 촌이 생겨나고 ‘훌륭한’ 직업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이후 메이지유신이 진행되면서 ‘전통예능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오늘날 그 전통이 무너져가고 있다. 20세기초 약 8만명에 이른 게이샤는 이제 1000~2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래도 최근 들어 게이샤 지망생이 늘어나고 있다니 재미나다.

‘게이샤야말로 일본을 상징이자 아이콘’이라면서, 특별한 경험에 상기된 딸아이와 작은 찻집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요미즈데라(淸水寺)를 향하는 길목에 이르자 가지각색의 화려한 기모노의 마이코가 한둘이 아니다. “우와~, 오늘 무슨 날이야”.

오늘은 토요일 오후. 게이샤 체험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이다. 교토를 찾은 젊은 아가씨들이 메이크업부터 기모노까지 완벽하게 변신을 하고, 교토의 거리를 마치 마이코인 양 다니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교토에는 마이코로 변신을 시켜주는 스튜디오가 많이 있다. 분장을 하는 데만 1시간 가량 소요되고 비용은 대략 1만엔 정도인데, 명소를 산책하면서 촬영을 하면 더 비싸다고 한다.

“헐! 다 가짜잖아.” 사춘기 우리 딸 입이 쑥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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