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의 군대 이야기①] ‘낙엽 사역’ 안 해본 사람과는 말도 섞지말라고?

낙엽이 뒹굴다

[아시아엔=최승우 예비역 소장, 전 예산군수] 필자가 사단장으로 재직했던 사령부 영내는 100만평 정도로 매우 넓고 아름드리 거목들이 숲을 이룰 정도로 경관이 좋았다. 그런 반면에 가을이 되어 낙엽이 질 때가 되면 엄청난 양의 낙엽이 쌓이게 된다. 낙엽은 청소당번 후임병의 사정을 안 봐주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진다. 조그만 나무라면 다 떨어지기 전이라도 미리 흔들어서 떨어버리고 땅에 쌓인 낙엽을 마저 쓸어버리면 되지만 아름드리 수십년생 거목들은 흔들기는커녕 올라갈 수도 없다. 그러니 청소하고 돌아서면 떨어지고, 빗자루 들고 한 바퀴 쓸고 나면 또 떨어지고, 그렇다고 온종일 떨어지는 나뭇잎만 바라보며 계속 지켜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 이등병 청소당번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그런 중에 고참병으로부터 청소를 잘못한다고 트집 잡혀 불이익을 당하는 예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청소당번 이등병들의 고민을 어떻게 덜어줄까 생각하다가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청소는 쓸데없이 물 뿌리고 빗자루 자국 내서 청소했다는 표시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줍는다는 개념도 있을 수 있겠다.’ 군에서는 대충 줍기만 해도 될 것을 구태여 무엇을 했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꼭 빗자루 자국, 물 뿌린 자국 남기기를 좋아한다.

나는 청소의 기본개념을 쓸기보다는 줍기에 두었다. “반드시 쓸어야 할 경우라면 쓸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서 줍는다는 개념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낙엽에 관해서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서 달리 생각해볼 사항이 있다. 낙엽은 오물로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가을이면 불그스레 또는 노랗게 물드는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누구나 낭만에 젖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읽던 책에서 낙엽에 관한 시와 수필들을 많이 접해보았는데 낙엽에는 낭만적인 요소가 깊이 스며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면서 거닐 때 밟는 소리와 함께 시인이 아니라도 많은 감정이 일고 나아가 시심까지도 절로 일게 마련이다. 낙엽을 모아 태울 때면 맵고 구수한 향기가 있고 그 냄새와 함께 어릴 적 옛날 고향집 생각을 하게 된다.

낙엽을 고달픈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즐기는 대상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낙엽은 오물이 아니다. 무조건 쓸어버리지 말고 즐기는 대상으로 삼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을 사뿐사뿐 밟는 재미도 느끼고, 스트레스가 꽉 차 있을 때는 낙엽을 꽉꽉 밟으며 풀도록 하자.”

장병들은 차도나 보행 길 또는 어느 공간을 걸으면서 쌓여있거나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즐기자는 얘기였다. 어떤 때는 낙엽을 쓸어 모아 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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