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원불교 성지에 사드 배치 웬말이냐” 과연 옳은 주장인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경북 성주군청 앞에 원불교 천막교당이 있다. 물론 성주군 초전면에 설치될 사드를 반대하기 위함이다. “전쟁과 긴장을 불러오는 사드는 안 되고, 평화의 하늘 소리를 외치고 있나이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말이다. 유력한 사드 후보지로 꼽히는 성주 롯데골프장이 원불교 성지와 약 500m 거리에 불과해 교도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원불교 성주 성지는 원불교의 두번째 최고지도자였고 ‘평화의 성자’로 추앙받는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의 탄생지다. ‘사드 철회 및 성지 수호 원불교 대책위원회’에서는 ‘평화의 성자’가 나신 성주 성지에 생명을 살상하는 전쟁 무기가 들어온다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어불성설이라고 외친다.

필자가 다니는 원불교 여의도교당에서도 사드배치에 대해서 찬반양론으로 갈려 치열하게 토론을 전개한다. 물론 결론이 없는 말싸움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차라리 ‘사드 반대’를 결의하고 투쟁할 것이지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논리가 약한 것 같다.

왜냐하면 세인들에게 “내 집 안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 종교라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드반대 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성직자들이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대책위원회가 원불교 전체의사를 대변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극히 일부 성직자들이 원불교 전체의 의사인 양 호도하면 안 된다. 지도자가 교도들을 잘못 이끌면 그 행위가 자칫 원불교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마땅히 침묵의 영광을 더 무겁게 알면 그것이 오히려 교단 만대에 영광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건기가 되면, 수만 마리의 물소 떼가 목숨을 건 대이동이 시작된다. 이때 어느 물소가 대이동의 리더가 될까? 가장 힘 센 놈일까 아니면 가장 빨리 달리는 놈, 또는 서열이 가장 높은 놈일까?

그러나 힘이 가장 세고 빨리 달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방향을 잡는 능력이다. 뛰어난 후각으로 물이 있는 지점을 파악하여 그곳까지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찾는 놈이 이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어느 때인가 수천 km, 수만 km를 내달려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을 불과 몇 km 앞두고 대형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다. 물 냄새를 맡은 리더가 뒤따라오는 무리에게 물이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를 본능적으로 보냈다. 이제껏 묵묵히 리더를 따라오던 물소 떼가 순간적으로 흥분했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충동으로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물소 떼는 뒤엉켜 아비귀환이 되고 말았다.

잘 달리고 힘도 있고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이 있어도, 물 냄새를 맡고도 신호를 보내는 본능을 억누르고 침묵할 줄 아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가 되는 거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사드에 대해서 침묵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해야 할 때와 들어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사드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지 않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사드 도입과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가 분분하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논란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 이전에 최소한 사드에 대한 확실한 진실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 찬성이든 반대든 사실을 잘못 알거나 아예 알지 못하면서 내거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공론밖에 안 된다.

애당초 사드는 무기체계이고 나름의 장단점과 한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드는 이런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양 진영에서 원하는 대로 ‘해석당하는’ 느낌이 있다. 사드 반대쪽의 논리 중 중요한 부분이 사드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드는 THAAD, 즉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약자다. ‘종말 고고도 구역방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맨 앞에 ‘종말’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 한마디로 내 쪽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즉 비행을 ‘끝내는’ 표적을 막기 위한 물건이지, 내 머리 위를 지나가 ‘비행중인’ 표적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드의 요격고도는 150k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북한이나 중국에서 발사된 뒤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이나 괌 등을 표적으로 발사되는 미사일에 대한 요격은 불가능하다. 사드가 요격할 수 있는 고도보다 너무 높기 때문이다.

사드 반대 논리 중에는 사드가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도 있다. 수도권이 북한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사드는 최소 요격고도가 40km 정도다. 한마디로 그보다 낮게 날아오는 미사일은 못 막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사드 자체는 ‘한반도만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수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핵 위험에서 지켜낼 수단이라면 무조건 성주가 원불교 성지라는 이유로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용맹에 세 가지가 있다. 일의 선후를 알지 못하고 완력만 주장하는 것은 만용(蠻勇)이요,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불의를 치는 것은 의용(義勇)이다. 그리고 외유내강으로 정당한 뜻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은 도용(道勇)이다.

사드가 원불교 성지에 배치된다고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분들은 세 가지 용맹 중에 어느 것에 속하는지 한번 회광반조(廻光返照) 해볼 필요는 없을까.

2 comments

  1. 사드가 배치되면 원불교 성주성지를 방문하는 교도님들은 마치 이런 상황이 된다.

    1.
    한국에 있는 원불교성주성지가 사드배치로 인하여 출입이 제한되고 출입허가를 미군들로부터 받는다.

    2.
    한국 내의 성지가 마치 미국에 있는 것처럼 되지않도록 우리 원불교인들은 최선을 다 하여야합니다.

    3.
    원불교인들에게는 내집이나 마음의 고향을 드나드는데 미국의 군인들에게 출입을 허락받아야 한다면 되겠습니까? 갖가지 핑게를 대서 하럭안하면 못들어가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성주성지는 안됩니다.

    4.
    강력한 전자파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도요?

    5.
    원불교는 과거에 군용으로 편입되는 원불교 시설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너무 쉽게 정책에 순응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현재 성주성지는 대토를 잡는다거나 이런 상황이 아닙니다.

    1. 사드 배치로 원불교 교도님들에게 여러 불편과 특히 신앙적인 문제도 생기는 점이 있군요.
      이런 점도 향후 자세히 들여다 보며 글을 보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답 양해 바랍니다. 발행인 이상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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