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란방문 결실 맺으려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박근혜 대통령이 최대 규모의 경제 사절단을 대동하고 이란을 최초로 국빈 방문하고 귀국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1977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울시와 테헤란이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수도에 다른 나라의 지명을 인용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딸이 대통령이 되어 이란을 방문했으니 박 대통령은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이란의 넓이는 165만km², 중국의 신강성(新疆省)의 넓이이며, 인구는 7천만, 만만치 않은 대국이다. 소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에 걸친 고대 페르시아는 로마나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였다. 다리우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것은 B.C 5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보다 3백년 앞선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의 세계대전이었다.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나 오토만제국이 몰락하자 페르시아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페르시아 왕실은 영국 왕실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 2차대전 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이 영국-이란 석유 합작회사를 국유화하자 영국은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회복하게 한다. 미국의 CIA도 여기에 개입했으며, 이후에는 영국 대신 미국이 이란에 적극 간여하게 된다. 팔레비 국왕은 오일 달러를 배경으로 중동의 강국을 지향하였는데,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F-4 팬텀을 중심으로 공군력이 세계 제4위였다. 이란의 핵 개발도 이때 시작된 것이다.

1979년 호메이니의 회교혁명 이후 미국 대사관이 난입한 시민들에게 점령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카터는 재선을 포기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에도 신정국가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수니파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중동의 자웅을 다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대통령보다 상위인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도 만났다. 하메네이는 1989년 김일성과도 만났는데 두 신정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미국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다가 핵을 포기한 이란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북한에 주는 충격이 클 것이다. 사우디가 석유 이후를 바라보는 국가 생존구상을 짜고 있듯이 이란도 국가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번에 타결한 이란과의 막대한 경제협력 규모는 대부분 양해각서(MOU)이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이 아니요 정식계약도 아니다. 앞으로 그 방향으로 잘 해보자는 의향서다. 더구나 재정이 고갈된 이란에 우리가 막대한 금융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를 가진 이란은 담보가 튼튼하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협정이 아니고, 외무부 안보과장이 장관을 대리하여 써준 자율규제 지침(guide line)이지만, 미국은 조약과 같은 구속력을 요구한다.

즉, 양해각서라 하더라도 양측이 앞으로 하기에 달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내세운 자원외교도 양해각서 차원인 것을 박근혜 정부에서 문제삼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다음에 오는 정부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같이 노력했어야 했다. 36년 동안 미국의 제재에 흔들리던 이란에 한국기업은 계속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란 사람들은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터키와 더불어 非아랍국가인 이란은 중동의 또 다른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이란은 제2의 중동 붐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정부, 기업, 국민이 하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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