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박사’ 김순권이 나이지리아 ‘명예추장’ 된 사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위대한 포부가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 위대한 포부가 바로 서원(誓願)이다. 일찍이 필자는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 후 꼭 돈키호테와 같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성불제중(成佛濟衆)’의 대 서원을 세우고 일직심(一直心)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자질이 모자라서인지 아직까지 헤매고 있다.

<타임>지가 20세기 인물로 선정한 19세기 최고의 위인은 아인슈타인, 루즈벨트, 에디슨, 링컨이었다. 한결 같이 엄청난 고난 끝에 이뤄낸 성공이다. 아이슈타인과 에디슨은 학습장애인, 루즈벨트는 소아마비 장애인, 링컨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 아버지의 핍박 속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보나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는 사회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야 했고, 장애의 절망과 가난한 환경을 이겨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 남다른 위대한 생각을 한 것이다.

아이슈타인은 모든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했고, 에디슨은 천재를 만드는 99%가 땀 흘리는 노력이고 나머지 1%는 영감(靈感)이라고 생각했다. 루즈벨트는 세상에서 두려워 할 것은 다만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공포뿐이라고 생각했으며, 링컨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놀라운 꿈을 이룬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역경은 장애물이 아니라 보다 밝은 내일을 창조하는 통로이고. 도구이며,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원망을 감사생활로 바꾸었다. 이와 같이 보통사람이라도 위대한 서원을 세우고, 위대한 기회를 포착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기면 위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타고난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또한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나 조건을 원망하지 않았다. 기구한 운명과 불우한 환경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 인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엮어갔다.

그런 위인 중의 한 분으로 우리나라의 김순권 박사가 있다. 아름다운 꽃으로 수놓아져 있는 아프리카의 아름답고 넓은 들판, 그곳에 첫발을 디딘 김순권 박사는 감탄이 아닌 근심으로 가득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꽃은 곡식 재배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스트라이가(일명 악마의 풀)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가’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전 지역은 물론 인도, 태국, 호주, 미국의 일부 농산물에 침범하여 큰 피해를 끼쳐왔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가 막대한 연구비를 들여가며 스트라이가를 막을 방제법(防除法) 개발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다.

김순권 박사는 거듭된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없앨 수 없다면 이겨보자!” ‘스트라이가’를 없애는 방법이 아닌 ‘스트라이가’를 이길 수 있는 강한 옥수수 품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몇 년 동안의 거듭된 연구 끝에 드디어 스트라이가를 이길 수 있는 강한 옥수수 품종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해마다 1백만 톤의 옥수수를 수입하던 나이지리아는 오히려 수출하는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김순권 박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이지리아에서는 ‘자군몰루’(위대한 뜻을 이룬 사람)와 ‘마이에군’(가난한 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이라는 명예 추장의 자리를 수여했다. 이는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칭호다. 김순권 박사는 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어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리는데 지금도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다.

자신이 갖춘 좋은 능력을 타인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보다 보람된 삶은 없다. 우리의 능력이 작거나 부족하다고 탓할 것 없다. 작은 능력이라 할지라도 나눔을 거듭하다 보면 기분 좋은 결실이 되어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내 안에 빛이 있다면 스스로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수행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원(願)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이다. 모든 보살이 다 함께 일으키는 원이라고 하여 총원(總願)이라고도 한다. 모든 불교의식과 법회의 시작에 삼귀의를 하고 마지막으로 이 사홍서원을 외워 끝맺는다.

국가와 종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외우는 사홍서원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네 가지다.

‘중생무변서원도’는 중생의 수가 한없이 많지만 모두를 교화하여 생사해탈의 열반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고, ‘번뇌무진서원단’은 다함이 없는 번뇌를 반드시 끊어서 생사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문무량서원학’은 한량없는 법문을 남김없이 배워 마치겠다는 것이며, ‘불도무상서원성’은 최상의 불도를 마침내 이루겠다는 맹세다.

이들 네 가지 서원 첫머리의 중생·번뇌·법문·불도는 불교의 기본진리인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제(四諦)와 대비를 시켜 구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앞의 하나는 이타(利他)의 원이고, 뒤의 셋은 자리(自利)의 원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불법은 천하의 큰 도다.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敎法)에 뛰어난 바가 있다. 이 위대한 서원을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큰 서원도 하고 하고 또 하며 될 때까지 닦으면 달성 못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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