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딸아이의 일본나들이

필자의 딸이 그린 도쿄타워. <그림=박은정>

방학이라 딸아이를 일본 할머니댁에 보냈다. 할머니가 얼마나 예뻐하는 손녀딸인가. 아직도 손바닥만한 스웨터를 만들어서 보내는데, 요 1년 사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할 것이라 특별 보너스를 마련한 셈이다. 고등학교 3년 찍소리 말고 공부만 하라는 무언의 압박도 겸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혼자보다는 친구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꼬드겼다. 사실 손녀딸 혼자면 할머니가 온종일 따라다녀야 하니, 친구가 하나 있는 게 나을 것이다. 밥만 주면 저희들이 알아서 도쿄를 휘젓고 다닐 것이니 말이다. ‘춘향이 가는데 향단이도 있어야지’하는 마음에 친구를 가자고 했는데, 친구 역시 ‘향단이가 간다니 춘향이도 가볼까’하는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다. 누가 춘향이고 향단이든 귀하지 않은 딸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어린 딸아이를 바다 건너 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할머니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인다. 막상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떠난다는 두 아이들보다 두 엄마의 마음이 무겁다. 이런저런 걱정을 했고, 너무 큰 일을 겁없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나 조금은 후회하기도 했다. 항공사에 ‘비동반아동서비스’, 이른바 보호자 없이 여행하는 아동을 목적지에서 인수자에게 인계하는 서비스를 신청하자고 했다. 휴대폰 로밍도 확실하게 하고, 보험도 들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아가씨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용감하고 훌륭했다. “창피하게, 우리가 뭐 애기인줄 알아”라면서 비동반아동서비스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고, 하네다(羽田)공항에서 할머니가 계시는 신쥬쿠(新宿)까지 리무진을 타고 갈 것이라고 했다. 가이드북을 보고 이미 다 연구했다는 것이다. 디즈니랜드니, 도쿄타워니 스케줄 표를 빽빽이 메웠다. 그것만인가. 저희들 학교에 유학 온 일본인 친구 야스요(やすよ)랑 연락이 닿아 도쿄에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국제적인 인맥을 자랑했다. 똑똑하기도 하지.

바깥에서 들어오자마자 양말을 벗어서는 현관에, 셔츠를 벗어서는 소파 위에 던지고 다리를 쭉 뻗어 드러눕는 아이에게 “얘, 일본은 집이 좁으니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라고 나무라면 “당연하지. 일본에서는 절대로 나의 긴 다리를 자랑하지 않을 것이며, 잠을 잘 때도 칼잠을 잘 거야”라면서 입을 열지 못하게 한다.

드디어 출발

드디어 그날이 오고, 차에 실고 김포공항을 향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못 잔 모양이다.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깬 딸아이가 “야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해”라면서 친구를 깨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을 놓아도 되는지 아닌지. 비행기는 떠났다.

5박6일.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낮에는 돌아다닌다고 받지 못하고, 밤에는 지쳐서 쓰러져 잔다고 받지 못하고,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딸아이 셋에 할머니까지 여자들 웃음소리에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다가 끊는다. 즐거운 모양이다. 행복한 모양이다. 이 기억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일제강점기 때 부잣집 도련님 몸종까지 붙여서 유학 보내면, 사각모자 쓰고 오는 이는 몸종이고 도련님은 게이샤 하나 끼고 왔다는데. 두 아가씨가 가지고 올 기억들은 사각모자인지 게이샤인지 먼 훗날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선물

그리고…, 커다란 가방을 들들들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는 그 날보다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엄마 나 보고 싶었지”라면서 가방을 푸는데 별별 요상한 것들이 가득하다. 디즈니랜드에서 샀다는 온갖 빼지들과 미키마우스 발바닥모양의 주걱. 알록달록한 불량식품. 선물이라고 스카프 2장. 그것도 한국에 진출한 중저가 상품이라 눈에 익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왜 일본에서 사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쇼핑이다.

이런 소리하면 언제적 얘기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내가 그 나이 때는 일제 볼펜만 하나 가지고 있어도 자랑거리였다. 일본은 바다 건너 먼 나라였다. 그게 지금은 이 어린 여자아이들도 가이드북 하나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지구가 좁아진 것인지, 우리가 다가간 것인지, 일본이 다가온 것인지. 우리네 춘향이와 향단이가 특별히 씩씩한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네다와 김포공항이 새 단장을 하고 항공편이 늘어나면서 서울과 도쿄는 더욱 가까워졌다. 금요일 밤 떠나서 주말을 보내고 온다는 ‘도깨비 관광’이라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이들에게 깃발을 든 ‘단체투어’는 촌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싼 항공티켓을 구하고 인터넷으로 민박집을 찾아서 떠난다. 그리고 시부야(?谷)니 하라쥬쿠(原宿)니 아키하바라(秋葉原) 거리를 마냥 누빈다.

스위스에 사는 놈이 외식하러 국경을 넘어 독일로 간다는 이야기나, 파리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주말에 도버해협을 건너 런던 웨스트엔드 거리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럽은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런 이야기가 현해탄을 사이에 둔 서울과 도쿄에서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하는 건 터무니없는 욕심일까? 아시아도 유럽처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황당한 희망일까?

4 comments

  1. ㅋㅋ 우리 아들도 3년전 친구와 둘이서 10일동안 일본을 다녀왔는데
    영어만 가지고도 여행할수 있겠더라면서 절약하는 생활이 가장 인상깊었다 하더군요. 그때 나에게 준 선물이 시세이도 화장품 향수 였거든요. 절약을 배웠다면서 왠 낭비냐고 왕왕거렸지만 지금까지 향기롭게 쓰고 있어요.

  2. 자녀분을 불임으로 만들고 싶으셨나 보죠? 도쿄 방사능 레벨이 체르노빌 강제이주구역 수준에다가 우라늄, 플루토늄등이 대기에서 검출되고 있는 곳이 도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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