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명승지 ‘알-아즈하르 모스크’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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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엔 중동지부장]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 ‘알-아즈하르 모스크’ 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사원의 역사는 파티마 왕조(969-1171)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를 정복한 자우하르 장군은 카이로를 왕조의 새로운 수도로 지정했고, 이를 기념해 알-아즈하르 모스크를 세웠다.

‘알-아즈하르’란 이름이 생긴 연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알-아즈하르가 ‘개화기의 절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사원이 후에 활짝 핀 꽃처럼 만발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이자 이슬람 종교지도자인 이맘 알리의 부인 파티마 알-주흐라의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파티마 왕조의 조각예술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아프리카 양식의 특징도 보인다. 당시 조각예술은 정확한 묘사, 대칭, 병렬배치, 동식물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문양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커다란 소나무 문양은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후 오랜 세월 침체기를 겪은 알-아즈하르 모스크는 1267년 알 자히르 바이바르스왕이 그동안 중단됐던 알-아즈하르 모스크의 금요예배 재개를 선언하며 다시금 융성기를 맞이한다. 또한 사원은 수세기에 걸친 개보수를 통해 번창해나갔다.

그러나 18세기말, 프랑스가 카이로를 점령하며 알-아즈하르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프랑스는 1798년 5월, 이집트-시리아 원정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사원의 화려했던 모습들도 처참히 무너졌다. 격정이 몰아쳤던 1798년 10월21일, 모스크 첨탑에 걸려 있던 프랑스 국기 아래 카이로 시민들은 점령군에 격렬히 저항했다. 훗날 ‘카이로의 폭동’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알-아즈하르 모스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번역 김아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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