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형제의 난’ 속, 별세 1주기 맞는 박용학 대농그룹 창업주 그리운 이유

박용학 대농그룹 창업주
박용학 대농그룹 창업주

[아시아엔=박호경 기자] 8월2일은 박용학 대농그룹 전 명예회장의 1주기이다. 1915년생인 그는 재계 1세대 대표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강원도 원산출신으로 동갑인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각별하게 지내면서 재계를 이끌었다. 70년대 오일쇼크로 주력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10년 만에 위기를 극복, 대농그룹을 재계 30위에 올려놓은 경이적인 인물이었다.

대농그룹이 오늘날 세계섬유시장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용학 창업주의 ‘인간중심경영’과 ‘사업보국’이 있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인간 중심의 경영을 실천하며 신의와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했던 그는 “사람을 믿고 일했기 때문에 30여 년간 부하직원과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한 번 고용하면 정년을 보장하는 평생 고용문화를 유지했다”고 생전에 털어놓을 정도로 인간중심의 경영을 실천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적 재능이 타고났던 고인은 ‘재계의 마당발’로 통했다. 대농그룹이 금성방직, 관악골프장, 미도파 등을 인수하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사교성이 바탕이 됐다. 큰 사업을 진행해 나갈 때에도 신의를 잃지 않았던 인간중심경영이 빛을 발하던 때였다.

박용학 창업주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사업보국’을 늘 언급했다. “기업이 바람직한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해 점증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한일경제협회 회장, 한중경제협력위원회 회장, 한국무협회 회장 등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며 민간차원의 경제외교를 통해 국가 무역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88년에는 양백재단을 설립해 매년 200여명의 중·고생 및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섬유발전 유공자 시상 사업을 벌이며 국민 복지에 기여했다. 1989년 경영 2선에 물러난 후 정주영 회장과 함께 남북교류사업에 매진하며 경제인들의 북한 방문 등에 힘을 보탰다.

요즘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보면서 박용학 회장을 떠올리는 경제인들이 있다고 한다. 도전과 열정의 기업가 정신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요즘, 대농그룹 창업주 박용학 회장 같은 재계 어른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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