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장군들⑧이병형] 살아있는 전술교범 ‘대대장’ 남겨···율곡계획 수립해 전력증강 초석마련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군인은 전공(戰功)으로 말한다. 그런데 전공은 운도 따라야 한다. 백선엽 대장은 전공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6.25전쟁의 영웅이다. 30대의 청년장군으로서 두 번의 참모총장, 두 번의 야전군사령관으로 7년반 동안 대장을 달았던 행운은 그 분에게 6.25전쟁이라는 무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김종오, 김백일, 송요찬 등도 무대가 주어진 가운데 최선을 다했다.

이병형은 송요찬의 수도사단장 휘하의 대대장으로 북진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과정을 모아 대대전투의 실상과 교훈을 정리한 <대대장>을 저술하였다. 육군의 전략단위는 사단이다. 사단의 전술단위는 대대이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나폴레옹,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군제의 기본이다. 대대장은 화력과 병력의 배치, 운용을 내 손과 발처럼 파악하고 운용하여야 한다.

사단장은 결국 대대장들의 전술지식과 통솔력에 의존한다. <대대장>은 이병형이 북진 간 각종 부딪치는 상황에 대한 조치와 병사들의 통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실로 대대전술교범의 살아 있는 교본으로 기계화전술의 교본 <롬멜전사록>에 비견될 수 있는 명저다.

이병형은 탁월한 전술지휘관일 뿐더러 국군 최고의 전략가였다. 그는 합참본부장으로 1974년 율곡계획을 입안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형을 이런 막중한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로 보았던 것이다. 이병형은 전력증강의 우선순위는 북한군을 압도할 수 있는 공군력 건설에 두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육군 장군의 대다수가 북한군 전차를 막기 위해 대전차병기와 대전차방벽에 골몰하던 시기였다.

초전에 우세한 공군력으로 적 공군기를 제압하면 이후 공군력으로 적 전차를 압도할 수 있다는 호쾌한 전략구상을 펴는 이병형 장군을 이세호, 노재현 등의 육군 수뇌부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병형은 일본 육군항공대에 복무하여서 공군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 눈이 깨었다.

박정희는 율곡계획의 집행을 육해공군 참모총장들의 회의체인 합동참모회의에 맡기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통제하는 합참본부장에 맡겼다. 율곡계획의 감사를 위해 특명검찰단을 만들고 단장에 동기생인 김희덕을 맡겼다. 그러나 박정희가 물러난 후 이 체제는 많이 흐트러졌다.

오늘날 방산비리가 검찰 특수부에 의해 파헤쳐지는 것은 박정희가 구상했던 방법이 아니다. 율곡계획의 기획, 집행, 통제(plan, do, see)를 대통령이 직접 제시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병형은 중장으로 2군사령관에 그쳤다. 박정희가 율곡계획 입안에 이병형를 발탁하는 판단으로 이병형을 군의 수장으로 발탁하였으면 윤필용과 하나회 등의 발호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신이라는 파탄에 들어선 박정희는 이미 통수권자로서 제 정신을 잃었다.

한신과 이병형에 의해 군이 이어졌다면 10.26, 12.12, 5.18 등의 비극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많은 후배들은 애통해 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강청에 의해 이병형은 전쟁기념관 회장으로 국군의 역사를 정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병형이 5군단장일 때 노태우는 예하 연대장이었다. 삼각지 전쟁기념관은 이병형의 역사의식과 구상의 웅대함을 보여준다.

이병형 장군은 탁월한 전술가이자 최고의 전략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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