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에 되돌아보는 ‘대한민국 건국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국권을 상실했다. 일제의 의한 조선 병탄은 1910년에 이루어졌지만,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범궐한 이래 이미 조선은 무너진 나라였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의 한일병탄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뿐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은 현대 한국의 연원이다. 일제의 무단통치로 국권을 상실한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뼈저리게 알게 된 조선민중은 총궐기했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을 영수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 이래로 만주,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서 외교, 군사투쟁이 계속되었다.

국내에서도 여러 갈래로 언론, 교육, 식산을 통한 독립운동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연합군 승리의 덕분이었다. 따라서 1945년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간 것은 불가피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미 1945년 9월20일 북한에 단독정권을 세울 것을 지령했고, 김일성을 우두머리로 한 북한정권이 생겨나 한반도 분할은 굳어졌다.(스탈린의 이 지령은 소련이 붕괴된 후 1993년에야 공개되었다.) 1945년 말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 결정과 뒤를 이은 미소공동위원회 등은 여기에 근거하여 추진되었다.

스탈린의 속셈을 간파하고 남한 단독정부를 세울 것을 주장한 이승만은 미국 국무성과 군정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이승만은 1941년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를 미국에서 출간했다. 이승만은 군국주의 일본의 야심을 조목조목 진단하고 일본이 머지않아 미국도 공격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책의 서평을 쓴 펄 벅은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너무도 큰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모든 미국인이 읽어봐야 한다”고 썼다. 이 책 출간 넉달 후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했다. 이승만의 혜안은 루즈벨트를 앞질렀다.

이승만은 1930년대에 이미 공산주의의 실체를 꿰뚫어보았고 곧 소련과 미국이 대립하리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선 마당에 남한 단독정권의 수립은 불가피했다. 1946년 6월의 정읍발언과 뒤를 이은 행보는 이를 실현시키려는 선구적 결단이었다. 김구, 김규식도 여기에서는 이승만을 뒤따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성립은 이승만의 혜안과 의지의 결집이다. 이 시기에 이승만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 다시없는 축복이었다.

대한민국 수립과정에서 총선거를 방해하는 좌익의 공작으로 대구, 제주도 등에서 폭동이 발생하였다. 많은 군경과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북한 공산통치를 경험하고 월남한 반공청년들의 투쟁이 이를 막았다. 안타깝게도 여기에서도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건립된 것은 기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회’에서 출간하는 <대한민국건국사>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필요 없고, 이미 결과로 판정이 난 사실에 대한 논쟁은 낭비다.

<대한민국건국사>는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사실(事實)과 정신을 명확히 정립하도록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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