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위민크로스DMZ 넘어 더 큰 뜻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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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글로리아 스타이넘 선생님.?기억 나시는지요? 벌써 13년이 지나는군요.

우리는 제가 한국기자협회 회장 시절이던 2002년 가을 뵈었지요. 그해 9월27일 제주 서귀포KAL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와 여성부 공동주최한 ‘여성운동과 언론’ 세미나에서 선생님께서 특강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여기자가 아닙니다. 그냥 기자입니다. 언제든 꿈과 도전정신을 늘 간직하십시오. 그것이 알파요 오메가입니다”라고 하셨지요. 그날 밤 야외가든에서 밤늦게까지 맥주잔을 부딪히며 여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친절히 대답해주시던 게 엊그제 일 같습니다.

특히 당신이 젊은 시절, 여성 성착취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플레이보이클럽에 바니걸로 위장취업했다는 얘기를 할 때 동석했던 기자들이 한편 놀라면서도, 자신도 그렇게 해보겠노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지요.

13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의 일원으로 평양에서 디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24일 북한쪽에서 남한지역으로 역사적인 첫발을 딛게 되겠지요. 그 이튿날 25일은 2500년전 왕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이 땅에 자비와 평화사상을 가르치고 떠난 부처님이 나신 날이기도 합니다.

통일부는 그동안 “안전 및 전례를 고려해 판문점이 아닌 경의선 육로 통과를 권고할 방침”이라고 밝혀왔는데, 방금 보도를 보니 선생님 일행도 이를 받아들여 경의선 육로로 이동하겠다고 발표한 모양이더군요. 아쉽겠지만 통큰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 판문점의 상징성이 아무리 크다 한들, 선생님과 메어리드 맥과이어와 리마 보위 등 두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포함한 전세계 10여개국 30여명의 ‘평양에서 서울까지’ 큰걸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일일수록 사소한 일들이 걸림돌이 되는데, 특히 남북한 문제에선 안타깝게도 더 그런 듯합니다. 저도 2002, 2005년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금강산은 1999년 이래 5차례 다녀왔습니다만, 그때마다 비슷한 일을 겪곤 했지요.

존경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선생님!

북한인권상황에 염려하고, 김정은 체제에 비판적인 남한 일부 단체가 귀하 일행의 이번 비무장지대 횡단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선생께선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동행하는 ‘한반도 여성평화 걷기’에 참여하는 분들도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 뒤집어 생각하면 이같은 남한 사회 일부의 반대목소리는 그만큼 ‘열린 다양성’의 반증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선생님 일행의 DMZ 평화걷기는 10년 가까이 꽉 막힌 한반도 남북이 서로 대화하고 왕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스타이넘 선생님.

이번에 귀하 일행이 통과하는 그 길은 해방 직후 김구 선생과 1998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넘은 길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남북 젊은이들이 고향 부모를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며 이름도, 자취도 없이 스러져간 길입니다.

바로 그 경로를 한반도 평화, 나아가 인류평화에 주춧돌을 놓기 위해 당당히 걸으시는 팔순 넘은 스타이넘 선생님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행의 발자취가 훗날 한반도 통일에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5년 5월22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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