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토막살인의 추억②] 보듬고 껴안아 ‘무리본능’ 충족시켜줘야

‘귀하 인증서’ 지문이 바로 ‘범죄 해결사’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에드워드 리처드 헨리가 인도 벵갈 수사국장 때 지문과를 설치한? 건 1896년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분류법을 완성했다. 1901년 런던 경찰청 부국장으로 부임해 이듬해 지문부서를 창설했다. 1913~18년 런던 경찰청장으로 재임했다.

선구자는 이외에도 많다. 브레슬라우대학 해부학교수 조앤 퍼킨제(Johann Purkinje)는 1823년 지문 9종류를 발견해 논문을 발표했다.

무자격자가 적격자를 사칭해 연금 타가는 사건이 빈발했다. 1858년 인도 치안판사 윌리엄 허셸은 수령 때 지문을 찍게 했다. 이를 대조해 본인 여부를 가리게 했다. 사기행위가 급감했다.

영국 외과의사 헨리 폴즈는 1880년 일본에서 도둑을 지문으로 잡은 경험을 토대로 <네이처>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영국 유전·통계학자 프란시스 갤튼은 1892년 연구서적 <지문>(fingerprint)을 발간했다. 그해 이 책을 읽은 아르헨티나 경찰 후안 부체틱(Juan Vucetich)는 지문을 이용해 살인사건 해결했다. 세계 최초라고 여겨지고 있다.

지문과 더불어 유용한 수사기법이 베르티용 인체측정법( Bertillon System)이다. 즉 ①키-몸무게 등 신체 측정 ②피부색-용모와 같은 신체 특징 기록 ③사진 등으로 구성된다. 1888년 파리 경찰청 범죄감식반장 알폰소 베르티욘(Alphonse Bertillon)이 창안했다.

정 없고 소외되면 갈곳은 범죄 굴레 뿐

텍사스의 변호사 A. D. 페인은 비서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부인과 어린 아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폭살시켰다. 사고 위장과 시체처리 위해 아주 간편하고 완벽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웬걸? 전기의자 앞에 와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늦은 후회. 어렸을 적에 받은 냉대와 무관심의 상처를 날리고 싶었다. 다이너마이트 가슴에 품고 가족을 죽인 방법으로 자살했다.

보복을 위해 살인을 하면 속이 후련할까? 정신병 살인자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 ‘자수 충동’에 늘 사로잡힌다. 몇 십년 지나서도 경찰서를 찾아간다. 1/3은 자살한다.

칼 팬즈럼은 미네소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배 고파 동네 부잣집에 들어가 훔치다 잡혔다. 여덟 살, 소년원에 넘겨졌다. 학대와 왕따 당했다. 내 편이 하나도 없었다. 반항심만 커졌다. 받은 그대로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강도-방화-남색-살인을 자행하고 투옥과 출소를 반복했다. 전직 대통령 집을 털기도 했다. ‘세상은 유독 나에게만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범죄행위는 복수였다.

서른일곱 때였다. 젊은 유대인 교도관 헨리 레서와 조우했다. 레서는 1달러를 선사했다. 처음엔 ‘이거 장난이야 농담이야?’ 했다.

배제의 배제=>받아들임

말문이 트이게 됐다. 레서가 진심으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갇혀 산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생기다니. 생애 최초의 지기(知己)다.

인생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다.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레서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후일 범죄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됐다. 2년 후 서른아홉에 처형됐다.

건강한 사람은 살인이나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산다. 매일 거처에서 출발해 목적지 들려 귀소(歸巢)한다.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거점 즉 생활영역(territory)에 자신이 그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존재하는 무리본능( herd-instinct)다.

학대와 차별은 그 연결을 끊는다. 생활영역이 소멸되고 다시 무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무진 노력한다. 그게 안 돼 외면당하면 ‘세상에 나 혼자야!’ 진공상태에 빠지고 삶이 무의미해진다.

자살과 살인과 비행과 범죄로 간다. 그래서 ‘배제의 배제’가 필요한 이유다.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함께’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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