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北 김정은, 러시아 ‘대독 전승절’에 불참하는 이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5월9일은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기념일이다. 세계 2차 대전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모두 참여하였지만, 독일군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피해를 많이 입힌 것은 소련이었다.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가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에서의 대독일전에 대해 득의양양하게 이야기하자 소련군의 원수들은 웃어버렸다. 소련군은 그보다 몇 배 큰 전투를 수도 없이 치렀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전광석화같은 진격 초기에 소련군은 스몰렌스크와 키에프에서 30만, 50만명이 각각 포로로 잡혔다. 하르코프의 전차전은 수천대의 전차가 충돌한 사상최대였다. 때문에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등 CIS 국가들에게 이 날은 모두 감회가 깊은 날이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는 서방권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대규모 열병이 벌어질 것이며, 득의양양한 푸틴이 이 무대를 지배할 것이다.

이 행사에 오기로 되어 있던 북한 김정은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외교부나 국정원의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모양이다. 당초 참석이 검토되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고 국회의원을 대신 보낸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문제는 깊이 검토하고 말 것도 없다. 푸틴이 주역이고 구 공산권의 국가원수들이 조연인 행사에 별 상관도 없는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애초부터 논의조차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김정은이 참석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권기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의전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했을 수도 있다.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 주석이었으나, 이 자격으로는 소련을 방문하지 않고 국가원수가 된 다음에야 소련을 방문했다.

당시 스탈린은 공산당 두목들을 국제법이고 의전이고 개의치 않고 함부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다. 명목상의 국가원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다. 러시아가 대규모 국제행사에 김정은의 요구에 맞는 대우를 해줄 수는 없다.

과도한 경제 원조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 북한을 두고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러시아라 할지라도 저희도 코가 석자인데 함부로 백지수표를 남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내부적 요인이 클 수도 있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항상 측근을 가장 경계한다. 약점을 제일 잘 알고 있고 실력을 동원하기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한 치의 공백이라도 있으면 무슨 사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 잠재력이 있는 2인자그룹의 최룡해, 황병서를 주변에 끌어두기 위해 모두 끌고 가면 다른 잠재요인이 준동한다. 최근에 대장에서 중장으로 강등된, 야심만만한 정찰총국장 김영철이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제일 크다.

대미외교에서 번번이 일본에 밀리는 윤병세 외교장관이 국회에서 호되게 당했다고 한다. 외교는 외교부장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문제가 있다는 경고는 귀담아 들여야 할 텐데 그런 기본자세도 갖추지 못하는 것이 한심하다. 5월9일 러시아의 대독전승기념일에 대통령의 참석을 검토하였다는 것은 우리 외교당국의 판단력이 얼마나 수준 이하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하니 미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일본은 이틈을 타서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하기에 달린 것이다.(皆反求諸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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