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⑨]장더장·류윈산·장가오리 등 ‘장파3인방’ 시진핑 독주 견제할까?

[아시아엔=안동일 동아시아 연구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상과 모습이 변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양회에서 장더장 전인대 상임위원장과 위정상 정협 주석은 약속이나 한 듯 자신들의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시 주석의 지도방침과 정치철학을 따르자는 다짐이었다. 각각 18차례, 15차례나 시 주석을 거명했다.

관례상 당 최고책임자의 지도방침을 언급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았기에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시 주석과 동급이라는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두 기구의 최고지위 인사였기에 주목됐다. 특히 장더장은 지난해 시 주석의 ‘의헌치국’에 반기를 들어 두 사람의 관계가 일촉즉발까지 갔었다고 알려진 터였기에 더 했다.

지난 4월3일, 중국 검찰은 송치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래 상무위원을 지낸 인물 중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된 사례가 없었기에 이는 ‘최고지도부의 성역’이 깨진 첫 사례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황제집단 또는 집단 대통령제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과 위상을 자랑해 왔다. 각각의 상무위원은 당 및 정부조직 가운데 핵심부서에서 최고권력을 행사한다. 주요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모든 상무위원과 동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보유한다. 상무위원회의 의사결정방식은 전원합의제를 원칙으로 하지만 합의가 어려울 때 표결을 위해 정원을 늘 홀수로 했다. 이들에 대한 의전과 경호는 국가 정상과 동일하다. 상무위원들은 홍장, 중난하이에 모여 사는 이웃이기도 하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최근 상무위원회 회의와 관련, 흥미 있는 기사를 게재했다. 올 들어 이 회의가 시진핑 주석에 대한 보고형식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양회 준비 및 현안에 관한 회의가 있었는데 종래의 상무위원 회의와 사뭇 다른 점이 있었다. 기존의 원탁회의가 아닌 전인대상무위, 국무원, 전국정협, 최고인민법원, 인민검찰원 등 기구 및 기관의 당조(黨組) 서기가 나선 업무 보고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당조란 당 조직이 아닌 곳에 업무처리를 지도 감독하기 위해 파견되는 당원들을 말하며 당조의 리더가 당조 서기다.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은 각기 국무원, 전인대, 정협의 당조 서기를 맡고 있다. 이들 세 상무위원은 다른 당조 서기들처럼 앞에 나가 업무보고를 해야 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이는 사실상 ‘시진핑에게 올리는 업무보고’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시 주석이 대권을 집중시켜 마침내 상무위원회 게임 규칙을 바꾸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는 하늘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13억 가운데 고르고 고른 8천만(공산당원), 그 안에서 숨막히는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을 치르고 오른 불굴의 투사들이 바로 상무위원들이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어떻게 해서 이들 백전노장들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군계일학이 되었을까? 해답은 18기 상무위원 면면에 있다. 시진핑,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왕치산, 장가오리 등 7인 상무위원 명단이 발표됐을 때 하방을 같이했고 호형호제하는 태자당 왕치산 위원 정도가 시 주석측 인사로 꼽혔다. 진작부터 라이벌이던 리커창을 필두로 장더장, 류윈산, 장가오리 등 네 사람이 시 주석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위원으로 분류됐다. 뚜껑이 열리자 예상대로 시 주석의 처지는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고군분투 덕에 지금은 옛말하는 상황이 됐지만 호수에 떠있는 오리처럼 물밑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시왕동맹’의 분투가 이어졌고 이제는 리커창, 위정성 위원까지 확실하게 시 주석의 편에 서있게 됐다는 것이다. 7인 상무위가 4대3으로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요즘 상무위 관측통들은 ‘2장 1류’, ‘장파 3인방’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사용한다. 장파 3인방이 말하자면 비주류, 즉 야당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상하이방, 장파의 인사들이 대개 그렇듯 부패와 관련된 흠결이다. 노련한 시 주석과 실권을 쥔 왕 서기가 이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요즘 3인방이 부쩍 저자세로 일관하는 연유다.

상무위 장파 3인방…장더장·류윈산·장가오리
상무위 서열 3위이자 장파의 리더격인 장더장은 1946년 랴오닝성에서 태어나 동북지방에서 성장했다. 옌볜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에 유학 한 적 있어 조선어가 매우 유창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1980년 옌볜대학 당조직 서기, 부총장으로 시작해 옌지시 부서기, 옌볜자치주 부서기를 지내며 급속 승진해왔다. 이후 저장성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2~2007년 광둥성 당서기를 지냈다.

그의 승승장구의 배경에는 장쩌민이 버티고 있다. 장더장이 장쩌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것은 북한 방문 때문이다. 장쩌민은 총서기 취임 후 1989년 첫 번째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골랐다. 장쩌민의 측근인 자오난지(趙南起) 장군(조선족)이 조선어가 유창한 연변대 부총장을 지낸 장더장을 수행원으로 추천했던 것이다. 이후 장쩌민의 각별한 신임으로 장쩌민의 아들이란 뜻으로 장쩌민의 성인 강(江)을 따서 ‘장더장(江德張)’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제15기, 16기, 17기 내리 중앙정치국에 들었고 2008년 3월에는 국무원 부총리에 올랐다. 2012년 보시라이 사건을 수습하는 역할로 충칭시 서기로 내려갔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선전항공 100억위안 리베이트사건’이라는 큰 비리 의혹이 따라 다닌다.

서열 5위 류윈산은 1947년생으로 제16기, 17기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10년간 당 중앙선전부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중앙당교 교장을 맡고 있다. 신화통신 기자 경력이 있는 그는 중국 내 신문, 출판물, TV, 영화,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를 통제하는 중공의 이데올로기 및 선전분야 수장이다.

산시성에서 태어난 류윈산은 1968년 네이멍구자치주로 하방을 가서 30년간 그곳에 있었고, 그 동안 1975년부터는 신화통신 주재기자로 활동했다. 그가 정계에서 승승장구했던 배경에는 최고인민검찰원장이었던 장인 자야춘왕을 매개로한 장쩌민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충성서약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장의 발탁으로 93년 선전부 부부장으로 내몽고에서 베이징으로 온 후 공산당에서 선전 관련 업무를 맡아오면서 미디어와 여론을 큰 무리 없이 잘 통제해 장의 칭찬을 받았다.

인터넷 상에는 그가 5억 중국 네티즌을 통제하는 비법이 ‘정(?), 관(關), 근(?)’ 즉 주시하고, 가두고, 추적하는 것이라는 비난의 글이 파다하다. 그리고 그에게는 베이징 금융계와 미디어계의 실력자로 등장한 큰아들의 정략결혼과 비리 관련 구설수와 내몽고의 부동산 큰손이라는 둘째 아들의 비리 의혹이 있다.

서열 7위 장가오리는 1946년생으로 톈진시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현재 상무부총리를 맡고 있다. 1946년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0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샤먼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뒤 광둥성의 마오밍석유공업공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광둥성 경제위원회 주임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자리를 옮길 때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성과를 냈다. 특히 2000년 장가오리가 선전시 서기로 재직 당시 장쩌민은 광둥에서 ‘3개 대표론’을 발표하며 ‘선전 모델’을 극찬하고 산둥성장으로 발탁했다.

퇴임 후 개인여행으로 산둥의 태산을 방문한 장쩌민을 위해 장가오리는 태산 전체에 일반인의 진입을 막고, 마오쩌둥과 동일하게 제왕 대접을 하면서 과잉 충성을 해 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는 선전시 서기로 재직 당시 아시아 최대 부호 리자청과 유착해 있었고 석유방의 일원으로 관련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그의 석유업계 비리는 쩡찡홍 장쩌민으로 그대로 연결 된단다.

이들 3인방은 전인대 상임위원장이라는 직위와 언론출판을 쥐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동안 시 주석의 발목을 잡곤 했다. 일부 관측통들은 심지어 이들이 지난해 지구촌을 크게 달궜던 홍콩 민주화 시위사태도 조장 방조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전인대가 백서를 발표한 시점, 관영언론이 강경일변도로 시위대를 매도했던 점들을 들고 있다.

현재는 장파 3인방이 시 주석 측에 백기를 든 형국이지만 앞으로 홍장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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