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맞는 사업파트너 어떻게 고를까?

[아시아엔=박현찬?스토리로직 대표] 사업이 잘 되어서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하자. 누군가 당신에게 동업자를 추천한다.

“이 사람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지 이익이 되는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며, 동업자가 요구하는 일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완수합니다.”

심지어 부정한 방법을 써서 남의 재산을 빼내는 재주도 있는데, 그런 일을 할 때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고 한다.

“틀림없이 당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듣고 보니 참으로 이상적인 파트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문제의 출제자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인데 그는 사람들이 이런 추천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상대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도덕성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 그를 신뢰하기 어렵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누가 동업을 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동업자 관계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때때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진실공방의 아귀다툼을 들여다보면, 신뢰를 내팽개친 사람들의 탐욕으로 악취가 진동한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도덕적이며 윤리적 행동을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이따금 “저 사람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선택 앞에서 머뭇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속이지 않는다면 나도 기꺼이 상대를 믿고 협력할 텐데, 하지만 그걸 누가 보장해준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상대를 믿지 않는 쪽을 택한다. 상대방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거라 생각하고, 나도 나의 이익에 따라 행동을 하고, 모두 자기의 이익에만 매몰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바닷가 어느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미역을 따며 살아간다. 바다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누구나 원하는 만큼 채취할 수 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보는 눈이 없을 때는 치어와 새끼조개까지 잡아 올렸다. 시간이 갈수록 어장은 황폐해져갔다. 풍요롭던 바다는 황무지처럼 변해버렸다.

‘공유지의 비극’ 바다 버전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익을 추구하고, 또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서 극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마침내 모두의 이익을 파괴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공동의 이익은 물론 개인의 이익도 보장될 수 없다. 결국 어민들은 바다가 살아야 자기들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약속을 한다. 경쟁하듯이 너무 많이 잡아 올리지 말고, 이듬 해 길어올려야 할 것들을 위해 그해의 수확에 만족하기로….
이 약속은 마을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만일 이 약속이 깨진다면 바다는 다시 황폐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서로에게 신뢰할 만한 약속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집단이 기업이라면, 혹은 국가라면 비용과 낭비가 엄청날 것이고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넓게 보면 유한한 자원을 가진 사회에서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인간이 처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렌즈를 개인에게 맞추면, 상대에 대한 불신은 내 안에 있는 이기심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그리고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만큼 흔하면서도 치열한 것은 없다. 조직이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상호 간에 신뢰가 필요해진다. 현명한 정치가 필요해지는 이유다.

<논어>의 안연(顔淵)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의 기본에 관해 묻는다. 공자는 경제(足食), 국방(足兵), 그리고 국민의 신뢰(民信之矣)가 정치의 기본이라고 대답한다. 경제는 재물, 국방은 권력, 신뢰는 명예와 가깝다. 그런데 재물과 권력과 명예, 이 3가지는 사람들이 가장 강렬하게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러니 정치란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된다. 자공이 다시 묻는다.

“3가지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국방’을 버려야(去兵) 한다고 답한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나머지 2가지 중에서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이번에는 재물을 포기하라고(去食) 한다. 공자는 정치에 있어서 ‘경제’나 ‘국방’보다 ‘국민의 신뢰’를 더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물이나 권력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망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져도 신뢰가 없으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다.

<논어> 학이(學而)편에 ‘양이득지(讓以得之)’라는 말이 있다. 사양함으로 얻는다는 뜻이다. 구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얻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재물이나 권력은 추구(求)하여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명예는 재물을 소유하듯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양(讓)하고 버림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국민의 지지 그 진심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건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참된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부여해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덕목일지 모른다.

신뢰는 경제나 국방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가치이다. 신뢰는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得) 것이다. 그래서 사양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 재물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얻어질 수 있는 덕목이다. 그러니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포기하고 버리는 것의 차원을 알아야 한다. 내 것을 움켜쥐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세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뢰라는 명예이다.

자기중심주의로는 절대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대부분 이 점을 오해해서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입으로 신뢰를 말할수록 이기적인 행동은 불거지고 사람들 사이에 불신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신뢰는 윤리적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과 집단,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생존의 문제이다. 신뢰를 받기 원하는가, 신뢰받는 정치가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대에게, 국민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능력부터 갖추도록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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