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조현아 수감’ 통해 본 교도소 ‘구금반응’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독방 대신 혼거 방에 수감됐다. 큰 도둑이건 좀도둑이건 중간도둑이건 잡히면 담장 안 감방에 갇힌다. 구금반응(拘禁反應)을 겪는다. 반응성 정신장애(反應性 精神障碍)의 하나다. 갇혀 있다는 환경이 갇혀진 자에게 작용하는 증상이다. 재판과 복역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원망(願望) 즉 망상을 하게 만든다. 상시 감시당하고 있다는 압박감으로 환각에 빠지게 한다. 의사도 속는 꾀병을 연출한다. 질병에 의한 도피다. 피의자, 피고인, 형 확정 수형자, 사형수냐에 따라 독방과 여럿이 함께 있는 혼거(混居) 형태가 달라진다. 형기의 단기, 장기, 무기 여부도 차이를 가져온다.

독방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외부자극이 제한된다. 감각차단 상황이 만들어진다. 인위적(人爲)이다. 상시감시체제를 유지한다. 커뮤니케이션도 관리자 측만의 일방통행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급성 망상이나 환각을 일으킨다. 과도한 흥분상태로 감옥폭발(監獄爆發)이 일어난다. 피구금자의 심리상태도 갈등상황을 좌우한다. 중요한 요인이다. 죄 지었다 하더라도 제일 큰 근심거리는 가족 안부다. 집 걱정, 재판에 대한 불만과 불안, 이번에 가석방되어야 할 텐데 하는 초조감. 이런 게 모두 마음과 몸에 충격을 준다.

감옥, 은어가 더 잘 통해?

구치소나 교도소 안 세계. 인간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지대라 보기 쉽다. 고독한 장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로는 일종의 작은 사회다. 죄 지은 자가 모인 곳. 여하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사람이 모여 산다. 농밀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행동을 세세하게 지배하는 공식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동시에 이를 능가하는 수형자끼리의 비공식적인 컨트롤도 있다. 은어로 소통한다.

좁은 방에 여럿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진다. 단 1분만이라도 그런 기회가 생기길 갈망한다. 규칙이라도 어겨 정작 그렇게 되면? 독방에서 하루 견디기도 힘들다. 그래도 사람 곁에 있어야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이 폐쇄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구금된 자의 과제다. 경력과 학력은 별 도움 되지 않는다. 개성과 품성이 변수다. 초연한 지식인은 드물다. 화이트칼라는 쉽게 무너진다. 게으른 좀도둑 출신이 독서광이 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든 자기의 거소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객이라고만 생각한다. ‘지금 이곳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임시로 잠깐 존재하는 나일 뿐이다.’ 이런 공상에 의지한다. 갇혀 있는 현실의 벽을 넘는다. 토마스 필립스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1792년 섬유제조업자의 시생아로 출생했다. 부유한 가정 덕분에 여섯 살에 이미 책 110권을 모았다. 옥스퍼드대에 입학 직후 희귀본 구입을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책을 하나씩 갖고 싶어 한 , 책 바보(Book Fool)였다.

여든살까지 생존하며 그 많은 유산을 다 소진하고 은행 대출에 가족은 빚 갚느라 고생해도 책을 샀다. 책 4만권에 양피지에 쓴 원고 6만점을 수집했다. bibliomania로서는 지금까지도 최대다. 그는 육군 중장의 딸을 사랑했다. 상대 집에서 반대해 장인이 죽은 후 결혼했다. 그런데 그의 딸이 자신의 조수였던 셰익스피어 연구가를 사랑하자 결혼을 불허하고 평생 절연하며 지냈다. 손자는 할아버지 책을 팔아 살았다. 남은 책은 2006년 7월7일 마지막으로 경매됐다.

스테판 블룸버그(Stephen Blumberg). 미국 최대 책도둑(book bandit 또는 biblioklept)이다. 북아메리카 대학도서관 희귀본 전문도둑이다. 327군데서 훔쳤다. 시초는 초등학교 때. 길가 주택의 문고리와 스테인드글라스 훔치기였다. 이 습벽이 책도둑으로 변했다. 현상금에 눈먼 공범이 제보했다. 범죄자는 대개 배신당해 잡힌다. 1990년 체포됐다. 당시 소장한 책이 2만3600권. 징역 71개월에 벌금 20만 달러를 물었다. 복역 중 책 읽는 대신 훔칠 책을 연구하며 감금생활을 극복했다. 세 번 더 잡혔다.

감옥소 담장 밖 모여 ‘신촌동’ 형성

1904년 개소한 경성감옥소는 1908년 지금의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기며 경성감옥으로 개칭했다. 현저동 101번지. 감옥만 이사하는가. 옥살이 하는 부모형제를 따라 피붙이가 근처로 온다. 남편 옥바라지 하는 아내. 자식 데리고 짐 들고 온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동네가 만들어진다. 새마을이다. 줄여서 새말, 지금의 신촌동(新村洞)이다. 감옥 맞은 편 인왕산 밑자락, 백년여관 골목이다.

세상이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 가족이라는 이름의 고난과 슬픔이 거기 있었다. 한스러움으로 점철된 이야기가 있었다. 담장 안팎에서 동시에 한숨 쉬었다. 같이 울고 웃었다. 살아서 나오길 바라는 염원 하나로 살아들 갔다. 안에서는 가족에 의지해 괴로운 나날을 극복했다. 밖에서는 굶다시피 어려운 생활을 이겨냈다. 광명이 찾아오는 날 남부여대(男負女戴) 하고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더러는 그냥 눌러앉았다.

구금반응(拘禁反應)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해답은 각자가 다 잘 알고 있다. 아주 쉽다. 실천만 하면 된다. 바로 ‘착하게 죄 짓지 않고 살기’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