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적인 화풍의 사제 ‘동행’, ‘5방색’ 민태홍과 ‘단색’ 황영수

대조적인 화풍의 사제 민태홍 화백(왼쪽)과 황영수 화백 <사진=오경남>

11~12월 파리 초대전서 ‘관조적? 작품 선보여

“단색그림은 관조적·철학적 성격이 짙습니다. 작품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그림공부는 물론이고 미학과 철학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과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초대전을 갖게 된 젊은 작가 황영수(26)씨는 자신의 창작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황씨가 초대전을 갖는 전시회는 사소한 화랑이 아니다. 150년 전통을 자랑하고 프랑스 3대 미술제로 일컬어지는 그랑팔레 에서 열리는 앙데팡당 미술제와 루브르 카루젤 미술제에 초대받은 것이다. 황씨는 루브르 카루젤 미술제에는 80호 대작 1점을 출품하고, 그랑팔레 앙데팡당 미술제에 대작 1점과 작은 작품 1점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랑팔레 앙데팡당 미술제의 경우 피카소·마티스·샤갈 등 현대미술을 빛낸 저명작가들이 거쳐갈 만큼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황씨에게 이번 미술제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미술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단색회화 대표작가로서 참여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따라서 황씨는 이번 초대전에 출품할 작품을 위해 요즘 경기도 김포시 작업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UNTITLE. 2014’. 캔버스 아크릴. 황영수 작(作). 프랑스 초대전 출품작

황씨가 이번에 출품할 작품은 예의 단색회화이다. 단색회화는 서양의 미니멀리즘이나 일본의 모노화와 상통하는 회화조류이다. 요즘 들어 단색회화에 대한 세계화단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단색회화 작품을 수집하려는 외국 수집가들의 방한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단색회화는 극도로 적은 색깔로 ‘형상 아닌 형상’을 그리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고요한 사색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감상자는 이런 단색회화 작품을 보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펼쳐볼 수 있다.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 이런 단색회화의 세계가 더 큰 휴식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니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할수록 단색회화가 선사하는 사색과 휴식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돈·관계·시간 등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강박’이 인간을 옥죄면서 또다른 강박을 낳는다. 그럴수록 인간에게는 고요한 관조와 사색의 시간 또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강박에서 벗어나 보다 원숙한 삶과 보다 원숙한 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

황씨의 이런 설명은 명상이나 침묵을 찾아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최근 흐름과도 통한다. 강박과 인위적이고 복잡한 관계의 그물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고 참된 행복을 찾고 싶은 인간의 갈망은 곧 화면을 단순한 색깔로 장식하려는 단색회화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이후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의 작가가 한결같이 이런 단색회화의 세계를 펼쳐왔다. 이에 비해 황씨는 비교적 젊은 나이이면서도 단색회화의 세계에 들어갔다. 황씨는 지난 5월 대한미국 현대미술대전 비구상부문 특선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데 이어 이제는 우리나라의 단색회화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릴 중책을 짊어지게 됐다. 황 작가는 앞으로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단색회화의 대가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다.

‘UNTITLE. 2014. 5. 23’. 캔버스 오일. 황영수 작(作). 제35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특선 수상작

황씨는 홍익대 미대 재학시절부터 이미 단색회화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작품의 색조도 흰색이나 무채색 계통이 주류를 이루면서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황씨의 작품이 프랑스 초대전에 나가게 된 데는 스승 민태홍 화백(56)의 추천에 힘입은 바 크다. 손톱과 못으로 그리는 ‘지두화’라는 독특한 기법의 작품세계를 오랜 세월 구축해 온 민화백은 지금까지 특별히 제자를 둔 일이 없다. 그렇지만 황영수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게 된 후 주저 없이 그녀를 제자 삼고 이번 초대전에 추천했다. 그리고 황씨 역시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인정받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10여명의 우리나라 초대작가 가운데 최연소 작가로 선정됐다.

그렇지만 민 화백과 황영수 작가의 작품세계는 사뭇 대조적이다. 민 화백의 작품은 일단 화려해 보인다. 전통적인 5방색을 바탕으로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고 동서양의 우주관을 두루 수용하려는 의욕에 따라 많은 색깔을 사용한다. 더욱이 두꺼운 나무판자를 못 등으로 긁어서 그리는 실험정신까지 보태져 힘이 넘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빛 또한 원광(Urlicht)에 가깝다고 할 만큼 강렬한 느낌을 준다.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 속에 감춰져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변화를 화폭에 담고 생명력 있게 표현해 온 결과이다.

‘빛은 어디서 오는가 2014’. 아크릴 혼합. 민태홍 작(作)

우주질서 속 감춰진 아름다움·변화 표현

“5방색 형상은 하늘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우주적 질서와 하나됨을 선언한다. 그 형상은 천지간에 흘러넘치는 우주적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민화백은 황 작가를 유일한 제자로 삼고 추천까지 함으로써 ‘사제동행’을 실천한다. 화풍이 대조적이기는 하지만 황 작가의 예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6월9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조계사 나무갤러리에서 열린 ‘다문화 가정 꿈나무돕기’ 특별초대전에는 민 화백과 황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어찌보면 이렇듯 서로 대조적인 화풍을 수용함으로써 또다른 우주적 조화를 실현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극과 북극이 있기에 오늘도 지구가 제 궤도를 돌고 있듯이.

민화백은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홍익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그림만큼이나 화려한 경력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국내외 10여차례 개인초대전을 가졌다. 제33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현대미술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수상경력도 풍부하다. 또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예술 홍보대사를 맡아 아프리카 저개발국 교육지원을 맡는 등 문화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민 화백은 현재 올해말로 예정된 주한인도문화원 초대전과 내년도 열릴 유네스코 파리전 출품작 준비에 여념이 없다.

두 사제 화가가 앞으로 보여줄 ‘아름다운 동행’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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