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이 ‘룸비니 국적찾기’ 나선 까닭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을 모신 네팔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 <AsiaN 자료사진>

2012년은 룸비니 방문의 해

최근 네팔에선 부처님 나신 곳이 인도가 아니라는 캠페인과 대외 홍보전이 한창이다. 주한네팔대사 카말 프라사드 코이랄라(Kamal Prasad Koirala)는 지난달 1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석가모니 부처는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에서 태어났다”며 “한국 학교의 교과서에는 부처의 탄생지에 대한 사실에 오해가 많으니 이를 바로잡아 달라”고 당부했다.

상당수 외국인들은 부처 출생지를 인도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 네팔쪽 설명이다. 조금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해외거주네팔인협회(NRNA, Non Resident Nepalese Association) 한국지부 주한네팔인협회(NRNA-Korea)의 200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5%가 부처님 출생지를 모르거나 인도라고 답했다. 카말 프라사드 코이랄라 대사는 “2008년 부임 이후 한국인들을 만나본 결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왜 부처의 출생지가 인도로 잘못 알려졌을까?

코이랄라 대사는 “석가모니의 출생지가 인도 땅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영국 학자들이 최초 기록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17세기부터 1947년까지 영국 역사학자들은 부처의 출생지를 계속해서 인도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특히 17~19세기에 걸쳐 약 300년 동안 룸비니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오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일대가 거대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았으며 룸비니가 인도 북쪽 국경 약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에 위치해 인도영토 안으로 혼동할 수도 있다.

석가모니와 관련한 성지는 네 곳이 있다.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 득도한 곳인 부다가야(Bodhagaya), 처음 설법을 한 사르나트(Sarnath), 그리고 열반에 들어간 쿠시나가르(Kusinagar)이다. 이 중 룸비니를 제외한 성지 세 곳이 모두 인도에 있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룸비니 역시 인도라고 지레짐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펜드라 야다브(Upendra Yadav) 네팔 외교부장관은 “인도가 국토와 인구면에서 큰 나라이고 네팔이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일반인들이 으레 룸비니도 인도땅이라고 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CNN 올해의영웅이자 마이티네팔재단 설립자인 아누라다 코이랄라(Anuradha Koirala)여사는 “인도와 네팔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연결되어 있지만 인도와 네팔은 분명 다른 국가”라고 말했다.

기원전 249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아쇼카왕은 자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우파굽타와 함께 성지순례에 나선 길에서 룸비니를 방문하고 그 자리에 석주를 세웠다. 브라미(Brahmi) 언어로 ‘여기서 부처님이 탄생하시다’라고 쓰여진 아쇼카 석주는 오늘날까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돼, 석가모니 탄생지의 진위를 가려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다.

룸비니개발프로젝트(Lumbini Development Trust) 책임자 바산타 비다리(Basant Bidari)는 “아쇼카 석주야말로 가장 중요한 증거”라며 룸비니 관련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바산타 비다리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룸비니 관련 자료. <사진=유네스코 홈페이지>

중국에서는 동진시대의 구법승 법현이 5세기초 룸비니로 순례를 왔고 당나라의 현장도 646년 룸비니를 순례했다는 기록이 있다. 1312년에는 네팔의 왕 리푸 말라(Ripu Malla)가 룸비니로 순례를 와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 위에 자신 방문기록을 새기기도 했다.

이후 룸비니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룸비니라는 이름도 어느새 룸민데이(Rummindei)로 바뀌었고 다시 루판데이(Rupandehi)로 바뀌었다. 루판데이란 명칭은 계속 이어져 오늘날 룸비니가 속한 지역의 이름이 되었다.

룸비니의 재발견

한편 1887년, 카드가 샴셰르(Khadga Shamsher) 총독이 자리에서 쫓겨나 네팔 서쪽 팔파(Palpa)로 귀양갔다가 아쇼카왕의 석주를 발견한다. 당시 이 일대엔 울창한 숲 안에 석주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석주 발견 소식은 인도에 머물던 역사학자 알로이스 퓨어러(Alois Fuhrer) 박사에게 전달된다. 브라미 언어에 능통했던 퓨어러 박사는 룸비니로 달려와 아쇼카왕 석주를 확인했다. 이어 1899년 인도의 역사학자 무크하르지(P. C. Mukharjee)가 아쇼카왕 석주를 재확인했다. 룸비니가 석가모니 출생지란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진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당시는 이미 석가모니 출생지가 인도라고 잘못 기록된 영국 역사가들의 글이 각국 언어로 출판되던 시기인데다, 20세기 초 세계대전까지 벌어져 룸비니에 대한 언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은 2차대전이 끝난 한참 뒤인 1967년 당시 유엔사무총장 우탄트(U. Thant)의 룸비니 방문에 의해 반전됐다. 그는 1970년 유엔 회원국 15개국의 동의를 받아 ‘룸비니 개발을 위한 국제위원회’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버마, 캄보디아, 독일, 프랑스 등이 룸비니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코이랄라 대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거룩한 성지인 석가모니 출생지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며 “유네스코는 이미 1997년 룸비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만큼 국제사회에서도 부처님출생지의 국적이 보다 신속히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7일 영국 대영박물관은 석가모니의 출생지를 인도로 잘못 표기한 그간의 기록을 전부 수정했다. 대영박물관엔 연간 6천만명이 찾는다.

한편 네팔정부는 2012년을 ‘룸비니 방문의 해’로 지정해 대대적으로 외국관광객 유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생 사로즈 마하토(Saroj Mahato)는 네팔정부의 협조를 받아 ‘Buddha born in Nepal(부처님은 네팔에서 태어나셨다)’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최근 유튜브에 올렸다. ‘룸비니는 네팔땅’ 회복운동은 이제 바야흐로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현 기자 news@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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