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한 정치인의 고백
<이 땅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정범구 지음/ 도서출판 삼인)
2011년 연말, 우리사회는 정말 괜찮은 두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박태준과 김근태. 이 땅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아이러니한 일인지 그들의 삶은 보여주었다. 정치인으로 절반의 성공에 그친 그들이지만 인간으로의 삶은 그 누구보다 훌륭하지 않은가?
이들 두사람에 어느 정도 근접하고 있는 이가 있다. 국회의원 정범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의 말과 약속은 실천 또는 실현되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정치인의 발언이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발언을 통해 국민들과 소통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구속한다. 국민과, 유권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그는 작년 말 <이 땅의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 고민을 한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인간 정범구, 한 정치인의 희망과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980년 독일에서 맞은 5월 광주는 이 책 첫머리에 등장하며 그의 고민을 내보인다.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당파적 입장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의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바로 이같은 정치인으로서의 목표 및 고민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벽에 대한 절망감이다.
이 책엔 그의 의정활동과 이면이 아주 솔직하게 배어있다. 몇 대목을 보자.
<등산길에 마주치는 주민들께서 반가이 맞아 주신다. 낯이 익은 한 어르신께서 인사말을 건네신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아마 정치인이란 직업을 갖고부터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인사가 바로 이 인사인 것 같다. 그 인사말엔?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바쁜데 고생한다”라는 격려의미에서 “요새 잘 안 보인다”는 질책, 또는 ”바쁜 것 같은데 어떻게 지역행사에까지 나왔느냐?”는 반가움 반, 질책 반의 인사까지….? 정치인의 일상은 사실 바쁘다. 어제는 고사하고 오늘 오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조차 오후에 생각해 보면 기억이 잘 안날 때가 있다.>(29쪽)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솔직히 털어놨다. 가깝지 않다기 보다 멀기만 했던?…?. 열린우리당 창당에 끝까지 반대한 것도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63~64쪽). 그런 그가 노무현과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리고 “당신을 떠나보내는 마지막날, 오늘에야 눈물이 났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왜 사람들은 15초면 되는, 게다가 에어컨 빵빵하고 화장실 역시 걱정 없는 서울 역사박물관 빈소를 놔두고 굳이 그 뙤약볕 아래, 아니면 새벽을 바라보는 그 늦은 시간에 몇 시간씩 하염없이 서 있어야 하는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를 찾는 것인지요?’ 라고 묻는다.
정범구는 ‘최루탄을 없앤 분’ DJ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2000년 1월 6일 아침 8시 대통령의 아침 식사에 초대 받았다. 청와대의 육중한 철문 3개를 통과한 다음 도착한 대통령 사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청와대 집사는 세차도 못해 얼룩덜룩한 나의 수박색 소나타 승용차를 보고는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큰 방에 대통령과 한광옥 비서실장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앉았다. 식탁에는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조기가 한 마리씩 그리고 조리김과 김치류, 밥과 국이 놓여있던 기억이 난다. … 한 시간 반 동안 아침을 들며 말씀을 나누었다. 주로 내가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께서는 들어주었다. 얼마나 치기만만한 언행이었을지 얼굴이 붉어진다. …DJP 연합의 문제, 후퇴하는 개혁의 문제 등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드렸지만 따져보면 대안 없는 비판이요, 창백한 지식인의 자기 현시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만남이 끝나갈 무렵 그가 말했다. “내가 정 박사보다 나이는 많지만 개혁에 대한 열정은 정 박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범구 정치입문의 순간이다.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해외에서 10.26과 광주민주항쟁, 5공 독재를 지켜보며 분노와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그 시절 만났던 김길순 공광덕 선생 등 해외민주화 운동가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도 담고 있다. 정범구는 5월이 오면 괴롭다고 했다.
?”5.18 30주년 나는 국회의원이 되어 다시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이제는 국립으로 으리으리하게 단장된 묘역. 수많은 정치인들과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워 있는 5.18 영령들이 내게, 그리고 그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은 그때 어디에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치인은 득표활동이라면 감옥에 갈 일도 때로는 서슴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정범구의 고민은 ‘득표’를 위해선 절대 ‘양심과 상식’을 팔지 못하는 데 있다. 필자는 2002년 5월 그를 처음 만난 이후 이런 그 모습을 변함없이 발견하고 있다. 그는 요새도 이 땅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회의를 종종 느낀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 스스로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터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하순?그의 출판기념회에서 아주 기분 좋은 장면을 목격했다. 다른 국회의원들과 달리 많아야 20명의 동료의원들이 잠시 얼굴을 비추고 빠져나가는 대신 그의 지역구인 음성 괴산 진천 증평 등 멀리서 온 시골얼굴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그 며칠 뒤 그와 나는 서강대교 앞 허름한 횟집에서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다. 30년 전 부른 <금관의 예수>를 고래고래 합창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 함께 하소서…”
술 취한 그가 말했다. “아무 곳에서나 누구 눈치 안 살피고 이렇게 노래 부른 게 몇 년 만이야?”
이 땅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정말 욕만 먹고 힘만 드는 일인 것 같다.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